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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에 담긴 민족의 통곡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6/07/01 [08:41]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에 담긴 민족의 통곡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6/07/01 [08:41]

▲ 사진 / 픽사베이   © 성남일보

[최창일 칼럼]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 선생이 향년 97세로 29일 별에 가셨다. 한 편의 음악이 시대를 건너뛰어 온 민족의 심장을 울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음악이 품고 있는 역사의 무게와 인간 보편의 감정이 시공간을 초월해 맞닿을 때, 노래는 단순한 선율을 넘어 하나의 역사적 상징물이 된다. 

 

작곡가 최영섭이 곡을 쓰고 시인 한상억이 노랫말을 붙인 가곡 <그리운 금강산>이 바로 그러한 작품이다. 1961년 세상에 처음 울려 퍼진 이래, 이 곡은 전주만으로도 수많은 한국인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민족의 전설적인 가곡으로 자리 잡았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조국 금강산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분단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이토록 웅장하고 서글프게 담아낸 곡은 단언컨대 드물다.

 

​이 곡의 탄생은 1961년 당시 한국방송공사(KBS)가 기획한 라디오 프로그램 '이 강산 맞이한 고운 노래'에서 시작된다. 당시 방송국은 이북에 고향을 두고 온 수많은 실향민의 깊은 아픔을 달래고, 국토의 아름다움을 찬미할 수 있는 새로운 노래를 기획한다. 작곡을 의뢰받은 최영섭 선생은 평소 깊은 문학적 교감을 나누던 한상억 시인에게 금강산을 주제로 한 작시를 부탁한다. 

 

당시 최영섭은 이북 땅이 훤히 내다보이는 강화도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분단의 현실을 몸소 목격하며 자란 인물이다. 눈앞에 두고도 닿지 못하는 고향과 강산에 대한 그의 개인적 경험은 한상억의 시를 만나는 순간 거대한 예술적 폭발력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민족의 한과 통일의 염원을 담은 명곡이 탄생한다.

 

​음악적 구조를 살펴보면 <그리운 금강산>은 그 어떤 가곡보다 극적이고 서사적인 전개를 지니고 있다. 도입부의 웅장한 오케스트라 혹은 피아노 전주는 마치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과 만물상의 기암괴석이 눈앞에 거대하게 솟아오르는 듯한 시각적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화려하고 압도적인 전주가 지나가면, 노래는 이내 서정적이고 차분한 조로 내려앉는다. "누구의 주제련가 맑고 고운 산"으로 시작되는 전반부는 금강산의 수려한 비경을 천천히 묘사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조국 강산의 아름다움에 젖어들게 만든다. 

 

그러나 이 곡의 진정한 가치는 후반부의 격정적인 반전에 있다. "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 때까지"로 이어지는 후반부는 서정성을 넘어 민족의 통곡과 분노, 그리고 기필코 가고야 말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분출한다. 성악가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음과 격정적인 종지는 듣는 이의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곡이 걸어온 여정이 남북 관계의 현대사와 궤를 같이한다는 사실이다. 1961년 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절에 창작된 원곡의 가사는 당시의 적대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대단히 호전적이고 직설적이었다. 원곡에는 북한 정권을 직접 겨냥한 "더럽힌 지 몇몇 해", "우리들의 원수 주검을 당할 때"와 같은 날 선 표현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남북 교류의 물꼬가 트이고 마침내 금강산 관광의 길이 열리면서, 이 곡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화해와 평화의 모드 속에서 적대적인 노랫말은 "못 가본 지 몇몇 해", "우리들의 소원 다 이루어질 때"로 부드럽게 수정된다. 이 가사의 변화야말로 이 노래가 박제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임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이다.

▲ 최창일 시인     ©성남일보

​<그리운 금강산>은 단순한 예술가곡의 영역을 넘어선다. 그것은 지난 세기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거대한 슬픔의 기록화이자,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분단의 상흔을 비추는 거울이다. 수많은 실향민은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고, 남북 합동 공연의 무대에서는 서로의 손을 잡는 매개체가 되었다. 

 

정치가 갈라놓은 땅을 음악이라는 선율이 다시 하나로 묶어 세우는 기적을 이 곡은 매번 증명해 냈다. 분단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이 노래가 지닌 전율은 더욱 짙어진다. 우리가 여전히 이 곡을 들으며 가슴 뛰는 이유는, 노래 속에 담긴 금강산의 비경이 언젠가 우리가 온전히 마주해야 할 우리 모두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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