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칼럼] 행복하기를 원한다.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길을 잃는다. 행복을 거대한 성취나 완벽한 조건, 외적인 물질의 풍요에서 찾으려 든다.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행복에도 씨앗이 있다’라는 문장을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씨앗은 화려한 꽃이나 탐스러운 열매처럼 당장 눈에 띄지 않는다. 작고 보잘것없는 형태로 존재하며, 흙 속에 묻혀 있을 때는 살아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그 작은 씨앗 안에는 장차 거목으로 자라날 모든 가능성과 생명력이 압축되어 있다.
행복 역시 이와 같다. 행복은 완성된 형태로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가장 낮은 곳에 숨겨져 있는 작은 씨앗을 발견하고 키워내는 과정 그 자체이다.
한국 문학의 거장인 박완서 소설가와 이해인 수녀(시인)의 작품들은 바로 이 ‘행복의 씨앗’이 어디에 살고 있으며, 어떻게 싹을 틔우는지에 대해 가장 따뜻하고 명징한 통찰을 제공한다.
박완서 작가의 문학은 삶의 비극과 속물근성에 대한 날카로운 폭로 속에서도, 인간과 삶에 대한 따뜻한 긍정을 잃지 않는다. 산문집 《호미》나 소설 속 곳곳에서 묻어나는 노년의 시선은 행복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작가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는 참혹한 고통을 겪었고, 평생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버텨낸 인물이다. 작가가 도달한 행복의 종착지는 거창한 명예나 부가 아닌, 마당의 흙을 만지고 채소를 가꾸는 지극히 소박한 ‘일상’이었다.
"봄이 되면 마당에 풀이 돋아난다. 그것들을 솎아내고 호미질을 지치도록 하고 나면 허리가 아프지만, 그 흙 속에서 생명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만큼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은 없다." 박완서, 《호미》 부분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행복의 씨앗은 바로 ‘살아 있음에 대한 감각’이자 ‘자연이 주는 소박한 선물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마당 구석에 피어난 민들레 한 송이, 이웃과 나누는 사소한 이야기, 계절의 변화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을 보며 깊은 위안을 얻는다. 이는 행복이 거창한 조건의 집합이 아니라, 주변의 작고 사소한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됨을 의미한다. 흔히 고통이 없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박완서의 문학은 상처와 슬픔으로 얼룩진 대지 위에서도 얼마든지 행복의 씨앗을 심고 가꿀 수 있음을 증명한다. 삶의 비극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그 안에서 흙을 만지고 밥을 지어 먹는 일상의 거룩함을 길어 올린다. 큰바람이 불어와 삶을 흔들지라도, 내 손으로 직접 일구는 일상의 작은 기쁨들이 단단한 씨앗이 되어 준다면 인간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박완서가 남긴 문학적 유산은 행복이란 먼 미래의 성취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손에 쥐어진 흙 속에 숨겨진 작은 씨앗을 발견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박완서 작가가 대지 위의 구체적인 일상에서 행복의 씨앗을 발견했다면, 이해인 수녀는 인간의 고독과 내면, 그리고 관계 안에서 피어나는 영혼의 씨앗에 주목한다. 그녀의 시집 《민들레의 영토》나 산문집 《기쁨이 열리는 창》에서 노래하는 행복은 철저하게 ‘마음의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행복은 큰 소리로 오지 않고 / 작은 미소로 온다 / 기쁨은 멀리서 찾지 말고 / 내 마음의 밭에서 키워가야 할 / 소중한 씨앗이다." 이해인, 〈행복의 얼굴〉의 부분이다.
이해인 수녀에게 행복의 씨앗은 다름 아닌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녀는 오랜 투병 생활 속에서도 절망하기보다 자신이 숨 쉬고 마주하는 모든 존재에 감사를 고백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 나를 향해 웃어주는 타인의 얼굴, 목을 축여주는 시원한 물 한 모금 등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가치를 잊어버리는 것들이 그녀의 시 안에서는 눈부신 행복의 씨앗으로 재탄생한다.
작품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아무리 좋은 토양과 기후가 주어지더라도, 마음이라는 밭에 행복의 씨앗을 뿌리지 않는다면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다는 점이다. 반대로 환경이 거칠고 황폐할지라도 감사와 기쁨의 씨앗을 품고 있는 사람은 마침내 그 자리에서 꽃을 피워낸다.
이해인 수녀시인은 타인을 향한 따뜻한 말 한마디, 이웃의 슬픔에 공감하는 눈물 역시 내 마음과 세상의 밭에 뿌리는 소중한 행복의 씨앗이라고 말한다. 이 씨앗들은 혼자만 점유하는 이기적인 행복이 아니라, 나누면 나눌수록 배가 되는 연대와 사랑의 행복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행복해진다는 것은 외부의 조건을 완벽하게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에 심어진 작은 씨앗들을 발견하고 정성스레 물을 주는 일이다. 거친 바람이 불고 겨울 같은 시련이 찾아올지라도, 마음 깊은 곳에 행복의 씨앗을 품고 있는 사람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봄이 오면 대지가 어김없이 싹을 틔우듯, 우리 역시 매일의 일상 속에서 감사와 기쁨의 씨앗을 심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 행복은 이미 우리 안에 씨앗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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