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칼럼] 경기 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가 요동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용남, 국민의힘 유의동, 조국혁신당 조국, 진보당 김재연, 자유와혁신 황교안 후보 등이 출마하며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포진한 ‘5파전’의 다자구도가 형성됐다.
중앙 정치 무대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대진표지만, 이 선거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다. 야권 성향의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깊은 탄식과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이 치열한 경합이 과연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라는 근본적인 회의론이다.
이번 평택을 선거에서 가장 뜨거운 뇌관은 단연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전면전이다. 정권 심판과 개혁이라는 거대 명분 앞에서 연대해야 할 두 세력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생존 게임을 벌이고 있다.
유시민 작가를 비롯한 여러 진보 성향의 평론가들이 우려했듯,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한 선거구에서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을 벌이는 것은 대승적 차원의 정치 발전에 결코, 이롭지 않다.
조국혁신당의 출마는 야권의 파이를 키우는 ‘보충재’가 아니라, 기존 야권 지지층을 쪼개는 ‘대체재’ 전락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당의 존재 목적이 선거 승리와 권력 획득에 있다 한들, 전체 지형을 보지 못하는 소탐대실 형 경쟁은 유권자들에게 피로감만을 안길 뿐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민의를 수렴하고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는 것인데, 지금의 평택을은 개혁 세력 내부의 주도권 싸움과 사적(私的) 명예회복을 위한 전장(戰場)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짙다. 이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진영 내 계파 갈등’의 변형일 뿐이며, 제도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라는 거대 미디어 권력이 무대를 독점하는 사이, 정작 가장 먼저 민생의 바닥에서 땀 흘려온 이들의 가치는 가려지고 있다. 진보당 김재연 후보와 그를 돕는 젊은 청년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거창한 중앙 정치의 역학관계에 기대지 않았다. 선거구가 획정되기도 전부터 평택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노동자, 서민,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가장 먼저 현장에 깃발을 꽂았다. 한국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이처럼 바닥에서부터 시민과 호흡하며 성장하는 풀뿌리 정치, 청년 정치가 주류로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선거 구조는 인지도와 거대 자본을 쥔 인물들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짜여 있다. 김재연 후보와 청년들의 진정성 있는 헌신이 거대 정당들의 세 대결 속에 묻히는 현실은, 한국 정치가 여전히 ‘인물 중심의 동원 정치’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땀 흘려 일한 이들이 대접받지 못하고,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는 거물들의 정치적 셈법에 지역구가 좌지우지되는 구조는 민주주의의 퇴행에 가깝다.
현재 발표되는 여론조사는 야권 후보들의 지지율을 합치면 여당 후보를 압도하는 형국을 보여준다. 즉, 유권자들의 마음은 ‘정권 심판’과 ‘개혁’에 가 있지만, 정치인들의 이기심과 정당의 수 싸움 때문에 표가 분산되어 자칫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조국 후보는 뒤늦게 공동 공약을 제안하며 연대의 몸짓을 취하고 있고, 민주당 내부에서는 조국혁신당을 배제한 채 진보당 김재연 후보와의 단일화만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후문이 들린다.
이러한 ‘밀당’과 수 싸움은 유권자들을 철저히 소외시킨다. 진정으로 한국 정치의 발전을 원한다면, 각 정당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민심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아야 한다.
조국혁신당의 출마가 야권 분열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상쇄하려면, 지금이라도 조건 없는 대승적 결단이 필요하다. 또한, 민주당 역시 거대 제1야당이라는 오만함을 버리고, 가장 먼저 현장에서 헌신해 온 진보당과 청년들의 노력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평택을 선거는 한국 민주주의에 무거운 숙제를 던지고 있다. 정치란 단순히 유명인이 나와 인지도를 경쟁하는 무대가 아니다. 지역 주민의 삶을 바꾸고,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는 엄숙한 과정이어야 한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명분 없는 치킨게임은 정치를 사유화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유시민 작가의 지적처럼 정치적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주목해야 할 것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의 거친 입담이 아니라, 평택의 새벽을 깨우며 가장 먼저 깃발을 들고 뛰었던 김재연 후보와 청년들의 발자국이다.
정치인들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민의에 복종하는 ‘아름다운 연대’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평택을의 유권자들은 냉엄한 투표로 그 오만함을 심판할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 여부는 바로 이 오만한 정치를 유권자가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달려 있다. <저작권자 ⓒ 성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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