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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출을 모르는 뿌리 예술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6/05/19 [08:29]

지출을 모르는 뿌리 예술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6/05/19 [08:29]

▲ 사진 / 방식 명장, 대나무 뿌리  

[최창일 칼럼] 예술가의 삶을 돌아보면, 진정한 예술적 성취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지하에서 긴 시간을 보낸 뒤에 찾아왔다. 

 

반 고흐는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을 팔았다. 카프카는 자신의 원고를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람들이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지상에 드러난 성공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멈추지 않고 자라났던 뿌리들 때문이다. 대나무 뿌리처럼, 그들의 예술적 근성은 이미 지하에서 완성되어 있었다. 

 

여기서 시화무(詩畵舞)의 관점으로 대나무 뿌리를 다시 읽고 싶다. 시(詩)는 언어로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고, 화(畵)는 형태로 존재의 내면을 포착하며, 무(舞)는 몸의 움직임으로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한다. 대나무 뿌리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행한다. 그것은 땅속에 자신의 서사(詩)를 쓰고, 그 형태로 하나의 추상 조각(畵)을 완성하며, 쉬지 않는 생장의 움직임으로 살아있는 무용(舞)을 펼친다. 

 

대나무 뿌리는 시화무의 가장 원초적인 실천자다. 대나무 군락지의 뿌리들은 독립된 개체가 아니다. 한 그루의 대나무에서 자라는 뿌리들은 서로 물과 양분을 나누며, 때로는 인접한 다른 대나무의 뿌리 계와 연결되기도 한다. 이 연결망은 식물학자들이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이라 부르는 숲의 지하 소통 시스템을 연상시킨다. 나무들이 균류(菌類)를 통해 서로 신호를 주고받고, 약한 나무에 양분을 보내주는 그 구조. 대나무 뿌리의 얽힘도 그러한 연대의 형태다. 

 

예술의 세계에서도 이와 같은 지하의 연대는 항상 있었다. 화가들은 서로의 작업실을 드나들며 영향을 주고받았고, 시인들은 편지와 술자리를 통해 서로의 언어를 교환했다. 인상파 화가들이 서로의 실험을 지지하며 함께 빛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간 것처럼, 대나무 뿌리들도 서로를 지지하며 군락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작품을 완성해 간다. 혼자서는 닿을 수 없는 곳에, 함께이기에 닿을 수 있다. 

 

이 연대의 미학은 한국 문학사에서도 발견된다. 1920~30년대 카프(KAPF) 문인들이 집단적 실천으로 문학을 사회변혁의 도구로 삼았던 것도, 청록파 시인들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 자연의 언어를 함께 지켜낸 것도, 모두 대나무 뿌리의 연대를 닮아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붙잡으며, 지상의 폭풍을 견뎌내는 힘. 대나무는 꽃을 드물게 피운다. 어떤 종은 60년에 한 번, 어떤 종은 120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 그리고 꽃을 피운 대나무는 대부분 죽는다. 이 사실이 주는 충격은 크다. 수십 년의 생을 살아온 뒤 단 한 번의 꽃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 그 꽃은 아름답겠지만, 동시에 처절하다. 

 

그러나 그 꽃에서 떨어진 씨앗은 다시 새로운 뿌리를 뻗기 시작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지하의 꿈을 향한 출발점이다. 예술도 그러하다. 위대한 작품은 작가의 생전에 완성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꽃 피는 것은 종종 작가가 떠난 뒤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그가 죽고 나서야 신화가 되었고,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그녀의 서랍 속에 잠들어 있다가 세상과 만났다. 대나무의 꽃처럼, 예술의 꽃도 기다림 속에 있다. 그 기다림을 견디게 해주는 것이 바로 뿌리다. 지하에서 꿈꾸는 뿌리가 있는 한, 꽃은 반드시 온다. 봄이 오면 대나무 군락지에서는 죽순이 솟아오른다. 하룻밤 사이에 수십 센티미터를 자라는 죽순의 폭발적인 생명력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러나 그 놀라운 속도는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겨우내 땅속에서 에너지를 축적해온 뿌리들의 총력(總力)이 지상으로 분출되는 순간이다. 

 

예술적 영감의 폭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오랜 침묵 속에서 쌓인 것들이 어느 날 하나의 시(詩)로, 하나의 그림으로, 하나의 몸짓으로 터져 나온다. 대나무의 꿈은 땅속에 있다. 우리가 우러러보는 곧고 푸른 줄기들은 사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한히 뻗어 나가는 뿌리들의 꿈이 지상으로 올라온 결과물이다. 

 

예술의 위대함도 그 지하에 있다. 화려한 전시장의 조명 아래 빛나는 작품들 뒤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오직 자기 자신을 향해 뻗어 나간 수많은 뿌리의 시간이 있다. 우리는 꽃을 바라보며 예술을 논하지만, 예술의 본질은 꽃이 아니라 뿌리에 있다. 지출(支出)할 줄 모르고 뻗어가는 저 뿌리들처럼, 예술가의 근성도 멈춤을 모른다. 지출이란 경제적 의미의 소비가 아니다. 멈춤, 절제, 자기 억제를 모른다는 뜻이다. 

 

조명도 없고, 갈채도 없는 지하에서, 그들은 오늘도 무한 매듭의 꿈을 꾸며 자신의 세계를 넓혀간다. 언젠가 그 꿈이 지상으로 솟구칠 날을 기약하면서. 땅속 깊은 곳, 대나무는 지금도 꿈꾸고 있다. 그 꿈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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