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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 자랑의 심리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6/05/13 [08:42]

손주 자랑의 심리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6/05/13 [08:42]

▲ 사진 / 픽사베이   

​[최창일 칼럼] 꽃이 지고 나서야 열매의 귀함을 안다고 했던가. 인생의 황혼 녘에 마주하는 손주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경이로운 생의 축복이다. 

 

흔히들 ‘자식 키울 때는 몰랐던 예쁨을 손주를 보며 깨닫는다’라고 말한다. 자식에게는 엄격했던 아버지도, 늘 노심초사하던 어머니도 손주 앞에서는 무장해제된 채 ‘손주 바보’가 되곤 한다. 단순히 한 세대를 건너뛴 애정을 넘어, 왜 우리는 자녀보다 손주에게 더 깊고 맹목적인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이 달콤한 ‘내리사랑의 역설’을 심리학과 생애 주기적 관점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자녀를 기르는 과정은 사랑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치열한 ‘생존과 교육’의 현장이다. 부모는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아이의 버릇이 나빠지지는 않을지, 성적은 처지지 않을지, 훗날 1인분의 몫을 하며 살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훈육해야 한다. 이때 부모의 사랑은 필연적으로 ‘걱정’과 ‘통제’라는 옷을 입게 된다.

 

​그러나 조부모의 위치는 다르다. 양육의 일차적 책임과 훈육의 의무는 이미 자녀 세대에게 넘어갔다. 조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오로지 ‘지금 이 순간’ 아이가 주는 기쁨에만 몰입할 수 있다. 밥을 흘려도 허허 웃을 수 있고, 떼를 써도 귀엽게만 보이는 이유는 그 아이의 인생을 완벽하게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책임감이 걷힌 자리에 남은 것은 필터링 되지 않은 순수한 유대감뿐이다. 젊은 시절의 부모는 대개 삶의 가장 가파른 고개를 넘고 있다. 사회적 성취를 일궈야 하고, 경제적 토대를 닦아야 하며,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자녀가 자라는 세밀한 순간들을 놓치기 일쑤다. 아이가 처음 뒤집기를 했을 때, 옹알이를 시작했을 때의 감동은 고단한 일상에 묻혀 빠르게 지나가 버린다. ​

 

반면, 삶의 속도가 완만해진 조부모에게는 ‘관조의 시간’이 허락된다. 인생의 큰 파도를 넘긴 뒤 마주하는 아이의 성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작은 손가락의 움직임, 눈동자의 반짝임, 서툰 발음 하나하나가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이는 단순한 노년의 소일거리가 아니라, 인생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심리적 회춘의 과정이다. 심리학적으로 손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과거 자신의 자녀 양육에 대한 ‘보상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많은 조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 더 다정하지 못했던 것, 바쁘다는 핑계로 함께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 무의식적인 부채감을 안고 산다.

 

​손주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행위는 그때 다 주지 못했던 사랑을 뒤늦게나마 쏟아붓는 일종의 ‘속죄’이자 ‘치유’이다. 자녀에게는 미안함 때문에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손주라는 통로를 통해 분출하며, 조부모는 스스로가 내면 아이를 위로받는다. 자녀는 조부모에게 과거의 회한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손주는 그 회한을 씻어낼 수 있는 깨끗한 샘물인 셈이다.

▲ 최창일 시인     ©성남일보

​인간은 누구나 소멸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을 갖는다. 노년기에 접어들며 체력이 약해지고 사회적 역할이 축소될 때, 손주의 존재는 강력한 생명력의 전이(Transfer)를 일으킨다. 내 피가 섞인 아이가 내 앞에서 웃고 뛰어노는 모습은 ‘나라는 존재가 사후에도 이 세상에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봐도 손주는 나의 유전적 가치를 미래로 전달하는 소중한 매개체다. 자녀는 나의 직접적인 연장이지만, 손주는 그 연장이 다시 한번 복제되어 영속성을 획득했음을 증명한다. 손주를 바라보며 느끼는 벅찬 감정은, 죽음이라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도 나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안도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성인이 된 자녀와 부모의 관계는 때로 복잡 미묘하다. 가치관의 차이로 부딪히기도 하고, 서운함이 쌓여 벽이 생기기도 한다. 때로는 자녀의 삶이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갈등을 빚기도 한다. 하지만 손주와 조부모의 관계는 세상에서 가장 ‘무해(無害)한 관계’ 중 하나다.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사회적 지위나 재산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온 마음으로 받아주는 존재로 신뢰하고 따른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조건 없이 사랑받고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경험은 노년기 자아존중감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 된다. 아이의 맑은 눈망울을 통해 조부모는 자신이 여전히 누군가에게 세상 전부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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