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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일 칼럼] 한국 사회는 유독 유행에 민감하다. 어제는 줄을 서서 사 먹던 특정 브랜드의 빵이 오늘은 자취를 감추고, 그 빈자리를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뽑기'나 자극적인 '먹방' 콘텐츠가 채운다. 이를 단순한 취향의 변화로 치부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 사회가 처한 독특한 구조적 심리와 정치·경제적 함의가 촘촘하게 얽혀 있다. 왜 한국인들은 이토록 먹는 것에 집착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유행의 파도에 몸을 던지는 것일까. 한국 먹방(Mukbang)이 세계적인 고유명사가 된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의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에게 식사는 단순히 영양을 섭취하는 행위를 넘어, 공동체의 유대감을 확인하는 의식이었다.
그러나 1인 가구의 급증과 개인주의의 확산은 '식구(食口)'라는 단어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혼자 밥을 먹는 '혼밥' 문화가 보편화 되면서 대중은 정서적 결핍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 대안으로 화면 속 타인과 함께 식사하는 먹방을 선택했다. 시청자는 진행자가 음식을 씹는 소리와 맛을 묘사하는 과정을 보며 가상의 공동체적 유대감을 경험한다. 이는 타인과의 관계는 맺고 싶지만, 그로 인한 피로감은 피하고 싶은 현대인의 이중적인 심리가 반영된 현상이다. 즉, 먹방은 현대 사회의 파편화된 개인들을 잇는 '디지털 식탁'인 셈이다.
한국에서 유행이 유독 폭발력을 갖는 이유는 정보의 초고속 확산과 집단주의적 성향 때문이다. IT 인프라의 발달로 특정 아이템이 화제가 되면 순식간에 온 국민의 관심사로 부상한다. 이때 대중을 움직이는 핵심 기제는 '나만 뒤처질 수 없다'라는 소외 공포, 즉 포모(FOMO) 증후군이다.
유행하는 빵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이나, 어린 시절의 뽑기에 열광하는 현상은 단순히 제품을 소비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SNS상에서 소통하기 위한 '사회적 통행세'와 같다. 유행하는 아이템을 손에 넣고 인증사진을 올리는 행위를 통해 개인은 자신이 추세에 합류해 있음을 증명하고 안도감을 느낀다. 이러한 동조 현상은 개성이 존중받는 시대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집단에서 이탈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한국 사회의 초상을 보여준다.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유행 현상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무력감의 산물이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저축과 노력을 통해 집을 사고 신분을 상승시키는 '거대한 서사'가 가능했다. 그러나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현재, 청년 세대를 포함한 대중은 거시적인 성공보다는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미시적인 만족에 집중한다.
이른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긴 사회에서 개인이 선택한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다. 집값 폭등이나 취업난 같은 거대한 장벽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대중에게, 맛있는 빵 한 조각이나 몇천 원으로 즐기는 뽑기 게임은 통제 가능한 확실한 보상을 제공한다.
특히 '뽑기' 유행은 노력보다 '운'이 성공을 결정짓는다는 냉소적인 사회 분위기를 투영한다. 불공정한 경쟁 사회에서 내 실력보다 낮은 확률의 행운에 기대어보는 행위는 일종의 유희이자 슬픈 자화상이다.
한국 사회의 기저에는 '결핍'에 대한 역사적 트라우마와 이를 극복하려는 강한 보상 심리가 흐른다. 과거의 절대 빈곤을 기억하는 세대와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세대에, 엄청난 양의 음식을 쌓아두고 먹는 먹방은 시각적·심리적 포만감을 준다. 이는 물리적 배고픔의 해소가 아니라,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고갈된 정신적 에너지를 '과잉된 소비'를 통해 채우려는 시도다.
또한, 유행이 바뀌는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른 것은 한국인 특유의 '역동성'과 '빨리빨리' 문화의 단면이기도 하다. 하나의 유행이 정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또 다른 유행을 찾아 떠나는 모습은, 안정을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갈구하는 현대인의 불안한 내면을 대변한다. 먹방과 뽑기, 빵으로 이어지는 유행의 연쇄 고리는 한국 사회가 앓고 있는 몸살의 징후들이다. 우리는 화면 속 먹방을 보며 외로움을 달래고, 줄을 서서 빵을 사며 소속감을 확인하며, 뽑기를 통해 일확천금의 꿈을 꾼다.
이러한 문화를 즐기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왜 이토록 유행에 목매는지, 그 본질적인 이유가 사회적 고립과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치가 해결하지 못한 공허함과 경제가 채워주지 못한 안정감을 자극적인 콘텐츠와 일시적인 소비로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현상을 소비하는 속도만큼이나, 그 현상이 발생한 사회적 토양을 성찰하는 속도 또한 깊어져야 한다.
유행은 지나가지만, 그 유행을 만들어낸 사회적 상처는 성찰 없이 치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이 '무엇을 먹느냐'를 넘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될 때, 비로소 우리는 유행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개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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