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칼럼] 봄이 오면 하늘나라에도 꽃이 피는가. 그 마을 어귀에 복숭아꽃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아래 낡은 평상이 놓여 있다면,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거기 다섯 시인이 둘러앉아 막걸리 한 사발을 나누는 풍경을. 황금찬, 최은하, 김수영, 김소월, 윤동주. 생전에 한자리에 앉을 수 없었던 이들이 별빛 아래 마침내 모인 것이다.
먼저 입을 여는 것은 언제나 김수영일 것이다. 그는 살아서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풀 한 포기가 바람에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도 혁명을 말하던 사람, 사소한 일상에서 자유의 결핍을 감지하던 예민한 촉각.
그가 묻는다. "소월 형, 진달래꽃을 그리 뿌려놓고 정작 떠나는 임을 붙잡지 않은 건, 시인의 언어가 사랑보다 먼저였기 때문이오?" 짓궂은 질문이다. 그러나 진지하다. 김소월은 잠시 먼 하늘을 바라보다 대답한다. "수영이, 나는 한번도 임을 놓아준 적이 없소. 다만 가는 임의 발길을 시로 붙들었을 뿐이오. 사랑이 사라지는 그 순간에도 아름다움은 남아야 한다고 믿었으니까."
소월의 목소리는 낮고 고요하다. 그의 시가 그랬듯이. 슬픔을 슬프다 하지 않고, 한(恨)을 한이라 부르지 않으면서도 독자의 가슴을 적시는 그 언어. 그것은 절제의 미학이었고, 동시에 가장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감정의 분출이었다.
윤동주는 그 대화를 듣다가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 하나에 어머니를 새기고, 별 하나에 동경(憧憬)을 새기던 시인. 그는 시가 부끄러움의 기록이라고 했다. "저는 아직도 부끄럽습니다. 제 시가 과연 시대를 살아 낸 것인지, 아니면 시대를 피해 숨어든 것인지." 그 말에 좌중이 잠시 조용해진다. 부끄러움을 자처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양심을 가진다는 것을,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시인이 알기 때문이다. 후쿠오카 교도소의 차가운 겨울이 그의 몸을 가져갔어도, 그 부끄러움의 시학은 여전히 이 땅의 독자들 가슴에서 살아 숨 쉰다.
황금찬 시인이 허허 웃으며 말을 받는다. 그는 한국 현대 시의 산증인이었다. 백 살 가까운 생을 살며 시 한 편, 또 한 편을 놓지 않았던 사람. "동주, 자네가 부끄러워한다면 나는 무어라 해야 하나. 나는 시를 쓰며 살아남았고, 자네는 살지 못했으면서도 시로 살아 있으니, 이미 자네가 이긴 것이야." 그의 목소리에는 오래 살며 겪어낸 세월의 무게가 실려 있다.
시는 수명을 다투지 않는다. 짧게 살았으나 영원히 읽히는 시가 있고, 오래 쓰고도 잊히는 시가 있다. 황금찬은 그 두 가지를 모두 알고 있는 시인이다. 황금찬 시인은 윤동주 시인보다 한 살이 적다. 그러나 황금찬 시인은 동주 시인을 자네라 부른다.
그때 최은하가 낮은 목소리로 끼어든다. 최 시인은 기독교적 시를 쓰며 살아온 시인이다. 구원의 내밀한 언어로 존재의 상처를 어루만지던 시인. "저는 늘 궁금했어요. 시는 위로가 먼저인가요, 저항이 먼저인가요?" 그 물음은 단순하지 않다. 소월과 동주가 서로 다른 답을 가지고 있고, 수영은 저항을 위로로 삼았으며, 황금찬은 오랜 삶 속에서 그 둘이 결국 하나임을 알게 된 사람이다.
김수영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한다. "위로 없는 저항은 폭력이 되고, 저항 없는 위로는 마취제가 되오. 시는 그사이의 아슬아슬한 줄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이지." 그 말에 다섯 시인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시화무(詩畵舞), 시와 그림과 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그 경지. 언어가 이미지가 되고, 이미지가 몸짓이 되어 독자의 심연을 두드리는 순간, 시는 비로소 완성된다.
막걸리가 한 바퀴 더 돌고, 복숭아꽃 잎이 바람에 날린다. 마치 풍장(風葬)의 장면을 보는 것이다. 소월이 그 꽃잎을 손으로 받으며 말한다. "우리가 지상에서 다 하지 못한 말들, 여기서라도 다 나눌 수 있겠지." 그렇다. 하늘나라의 시인 마을에는 원고 마감도 없고, 검열도 없고, 가난도 없을 것이다. 오직 언어와 언어가 만나는 그 아름다운 충돌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그들의 시를 펼칠 때마다 다시 시작된다.
하늘나라 시인의 마을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들을 나는 듣는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들이 다시 살아 내게 말을 걸어온다. 시인은 죽지 않는다. 시가 살아 있는 한. <저작권자 ⓒ 성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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