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칼럼] 제주 바다를 따라 난 좁은 골목, ‘올레’. 한때 마을 사람들의 발소리로 채워지던 그 길이 이제 전국을 걷게 만드는 히말라야가 됐다.
이 길을 되살린 서명숙이 어제(7일) 떠났다. 그녀가 남긴 제주올레는 단순한 도보 코스가 아니다. 한국이 잃어버린 공동체와 자연을 발로 되찾은 혁명이다. ‘올레’는 제주어로 집 닿는 골목길. 자동차가 섬을 삼킨 2000년대 초, 그 길은 잡초에 묻혀 기억 속으로 사라져갔다.
서명숙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걸으며 깨달았다. “제주에도 이런 치유의 길이 필요하다.” 2007년 귀향 후 첫 코스를 열었고, 5년 만에 제주 한 바퀴 437km를 연결했다. 정부 예산 없이 민간 자원봉사와 마을 주민 손으로 길을 냈다. 새 길을 뚫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옛길을 청소하고 표시한 것. 그 결과 제주올레는 관광 상품이 아니라 지역의 숨결을 되살린 생명줄이 됐다. 연간 100만 명이 찾는 글로벌 트레일로 성장한 비결이다.
서명숙은 1980년대부터 한겨레신문에서 여성 기자, 편집장으로 활약한 베테랑이었다. 치열한 언론판에서 칼을 빗나가지 않던 그녀가 50대에 제주로 내려온 건 반전이었다. “언론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면, 길로 바꾸자.” 이 단순한 결심이 제주를 바꿨다.
그녀의 방식은 발끝의 사유와 함께였다. 행정에 의존 말고 주민 참여, 여행자와 지역민이 함께 웃어야 길이 산다는 원칙. ‘깨끗한 올레’ 캠페인으로 쓰레기 줍기는 필수 코스. 올레길은 제주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돌보는 여행을 강요했다. 한국 관광의 패러다임을 뒤집은 셈이다.
올레길 서사는 프로젝트 성공담이 아니다. 상처 입은 한 여성이 걷기를 통해 치유되고, 그 힘이 제주 전체를 감싸는 이야기다. 서명숙은 말했다. “길은 자연과 사람을 잇는다. 걸으면 삶의 방향이 보인다.” 2026년 4월, 그녀는 자신이 낸 길 위에서, 68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그녀 부음 문구는 상징적이다. “올레길에서 행복하라.” 길을 낸 사람이 길로 돌아간 아이러니. 하지만 올레길은 이제 그녀 없이도 걷힌다. 마을 경제 부흥, 생태 보전, 치유 여행의 모델. 서명숙이 증명한 건 길이 사람을 살린다는 사실이다.
올레길 성공은 제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도시화로 길이 사라진 한국 전역에 주는 메시지다. 서울 둘레길, 부산 해운대길, 신안 무지개길 등 후발주자들이 배워야 할 건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길은 돈이 아니라 사람의 손끝에서 태어난다.
서명숙이 떠난 지금, 올레길은 27개 코스 437km를 넘어 제주의 정체성 자체가 됐다. 그녀의 발자국은 지워지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길을 잃은 이 시대에, 올레길은 이렇게 말한다. “걸어라. 그러면 길이 보인다.” 그녀처럼 길을 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제주 바다 따라/올레 싹튼다/서명숙 발자국/잡초 뚫고 피어나/집에서 바다로,/골목이 하늘 열고//오름과 골짜기/오름 등반/한라 정수리 닿아/바람이 속삭인다/“걸어라, 쉬어라”/곶자왈 숲 새소리/마음의 빈집 채운다//마을의 속삭임/돌하르방 웃음/한라봉 향기 스며/주민 손길 닿은 길/여행자 발소리와 섞여/공동체 되살아난다/올레는 단순 길이 아니로다//치유의 여정/산티아고에서 돌아온/그녀의 눈물 한 방울/제주 땅에 스며들어/437㎞ 잇는다/걸을수록 가벼워지는/삶의 짐 풀린 길//길의 품/올레 끝없이 펼쳐/서명숙 떠난 빈자리/바람이 대신 걷는다/“행복하라” 속삭이며/제주 한 바퀴 돌며/영원한 순례 시작된다’
최창일 <바람의 길> 전문이다.
<나의 길, 산티아고 순례길에 두고 온 스틱> 시집의 시인 최희양 은 ‘까미노 블루 2’에서 ‘–제주도 올레길 바람’을 노래하고 있다.
‘습관의 리듬처럼 불어오는 성산포 폭풍/ 빠르고 날카롭게 나의 내면을 적신다// 우산 뒤집듯 손잡이 없는 제주 돌 바람/ 불확실한 세상 뒤집으려 든다// 마주친 제주 올레길 주황 화살표/까미노블루 거리비석 화살표 만나듯// 그간 안부 묻는다/ 늘 상 추억은 꽃이 되어//야곱과 걸었던 그 날의 순례길/제주 올레길에서 다시 걷는다// 성산 앞바 속 헤엄치는/ 까미노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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