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칼럼] 한국현대시인 중 박재삼 시인처럼 절절한 그리움을 그린 시인이 또 있을까? 박재삼(朴在森, 1933~1985) 시인은 현대 시의 흐름에서 한결같이 고향의 언어, 슬픔의 정조, 체념의 미학을 견지한 시인이었다.
그의 시는 비애와 정감이 뒤섞인 ‘서정의 고향’을 끝내 떠나지 않았다. 모더니즘과 현실 참여의 바람 속에서도 그는 물러서듯 그 곁에 머물렀고, 오히려 그 자리에서 한국어의 가장 순한 얼굴과 정직한 눈물을 간직하였다. 그는 물처럼 순하고 슬픔처럼 깊은 시를 쓴 이였다.
박재삼은 경상남도 삼천포에서 태어나 평생을 고향과 가까운 남쪽 바다의 정서 속에서 살았다. 불우한 어린 시절과 가난, 그리고 가족사를 둘러싼 상실의 체험은 그의 시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그 어둠은 증오나 저항이 아니라 체념과 연민의 색으로 물들었다. 박재삼은 슬픔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았고, 고통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존엄한 내면으로 변환시키는 언어적 윤리를 지녔다.
박재삼의 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정서는 단연 ‘그리움’이다. 그러나 그 그리움은 단순한 향수(nostalgia)를 넘어선다. 그것은 어머니와 같은 상실된 절대의 품을 향한 염원이며, 인간의 본질적 고독과 마주하는 사유이다. 그는 일찍이 ‘그리움은 사무치는 것이지만 서러운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시는 이처럼 서럽지만 결코 흐느끼지 않고, 울지만 소리 내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천년의 바람」나 「친구여 너는 가고」의 분위기와는 또 다른, 슬픔의 뿌리가 더 깊은 정조가 박재삼의 대표 시 「추억에서」에서 드러난다.
‘마을 어귀를 돌아가면 / 언제나 마중 나올 듯한 사람 하나 있어 / 자주 길 떠났던 내가 / 끝내 못 돌아온 것은 / 그 사람이 없어진 때문이었다.’
이 짧은 시편에는 고향과 어머니, 기억과 상실이 겹겹이 스며들어 있다. 여운은 길고 언어는 절제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박재삼이 구현한 ‘슬픔의 미학’이다.
박재삼의 언어는 ‘살아 있는 고어’에 가깝다. 그의 시에는 고전적인 한자어나 사어(死語)가 종종 쓰인다. 그러나 그것이 고루하거나 낡은 것이 아니다. 시어는 마치 오랜 시간 숙성된 술처럼 향기롭고 깊다. 그는 일찍이 ‘시를 써서 가장 좋아질 수 있는 말이 되도록 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그의 시는 시인이 자신에게 가장 좋은 말, 사람들에게 가장 순한 말을 고르고 다듬어 써 내려간 언어적 정결의 산물이다.
박재삼의 시는 시조나 정형시의 리듬감을 현대 시에 이식한 대표적인 예다. 형식적으로는 자유시를 쓰면서도 리듬과 음률을 중요시하였다. 이는 그의 시가 고요하면서도 입안에서 되새김질 되듯 운율이 살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는 박재삼의 시세계가 압축적으로 담긴 작품이다.
‘저문 해를 안고 돌아오는 어머니의 / 등처럼 따스한 / 저 해를 본다.’ 여기서 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생명의 온기, 회귀하지 못한 그리움, 어머니라는 무조건적인 수용의 상징이다. ‘해를 본다’라는 행위는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라, 시적 자아가 삶의 근원과 다시금 만나는 장면이다. 그는 태양조차 ‘어머니’로 받아들이며, 세계와 자아 사이에 따스한 중재를 요청한다. 또 다른 작품 「울음」에서는 박재삼의 체념의 미학이 도드라진다.
‘그저 울고 싶을 뿐이었다 / 울음도 말 못 할 고통을 알아주지는 않으므로’ 이 시는 말하자면 ‘말해지지 못하는 슬픔’을 드러낸다. 울음조차 해결이 되지 않음을 아는 자의 슬픔은, 그리하여 더 깊다. 박재삼은 이런 깊이를 통해, 독자에게 함부로 위로하지 않는 진실한 시를 보여주었다. 1960~70년대는 참여시, 민중시, 모더니즘 시가 각각의 조류를 이루며 문단을 형성했다.
그러나 박재삼은 이들 모두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 시대의 고통을 내면화했고, 직접적으로 외치기보다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시를 썼다. 그렇다고 그가 현실을 외면한 시인이라는 평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인간의 감정과 정신의 연약한 부분을 시로 끌어안으며, 인간의 심상을 되찾고자 했다. 신경림이 말한 ‘서정적 저항’의 전통에 가까운 시인이었다. 외치는 대신 노래하고, 고발하는 대신 묵상하는 방법으로 한국인의 아픔과 체념을 끌어안은 시인. 시대를 비켜 가며 시를 지켰지만, 시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품은 시인이다.
박재삼의 시는 물과 같다. 억지로 앞서거나 거세게 흐르지 않는다. 그 물은 모든 것을 담아내고, 오래도록 젖는다. 시인의 언어는 낮고 부드럽지만, 그것이 품은 사랑과 체념은 오히려 성긴 슬픔보다 더 절절하다. 시인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무 많은 말과 이미지 속에서 길을 잃은 현대의 시인들과 독자들에게, 슬픔을 슬픔대로 받아들이는 고요한 감각이 여전히 필요한 것 아니냐고. 박재삼은 죽었지만, 그의 ‘그리움’은 우리에게 여전히 살아 있다. 그것은 고요히, 그러나 분명히 우리 안에서 ‘그리움’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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