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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례(詩禮)를 내린다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5/11/07 [07:05]

시례(詩禮)를 내린다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5/11/07 [07:05]

▲ 사진 / 픽사베이   ©

[최창일 칼럼] 기독교에서 세례(洗禮)는 물로 씻는 의식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정화의 상징이다. 인간은 물에 잠기며 낡은 자아를 씻어내고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시인에게 언어는 무엇인가? 물과 같은 것이다. 시인은 언어의 샘에 자신을 담그고, 그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이러한 의식을 시례(詩禮)라는 평론가도 있다.

 

시례는 시에서 거듭남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언어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언어 앞에 자신을 낮추고 경건히 임하는 일이다. 언어는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인 동시에, 인간을 이끌어가는 신비한 생명체다.

 

시인은 언어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을 씻는다. 그렇게 언어 속에 잠기는 순간, 시인은 세속의 먼지를 털어내고 언어의 물결 속에서 새 생명을 얻는다.

 

‘세례’의 본뜻은 ‘잠긴다’라는 데 있다. 물속에 잠기는 행위는 단순한 몸의 움직임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새로이 만드는 상징이다. 시 역시 그러하다. 시를 쓴다는 것은 감미로운 언어의 물결 속으로 자신을 잠그는 일이다. 시인은 현실의 건조한 언어에서 벗어나, 언어의 근원을 찾아 깊이 내려간다.

 

영국의 시인 셸리(Shelley, 1792~1822)는 “시인은 어둠 속에서 꾀꼬리처럼 감미로운 목소리를 부르며, 고독조차 감미로움으로 다독인다.”고 했다. 셸리의 말은 시의 본질을 정확히 짚는다. 시인은 어둠 속에서도 노래한다. 절망의 순간에조차 감미로운 목소리를 잃지 않는다. 시인은 고독을 언어로 다독이며, 타인의 상처까지 감싸 안는다. 시인이 부르는 노래는 단순한 울음이 아니라, 세상을 위로하는 예배의 소리다.

 

시는 언제나 위로자의 편에 서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인간의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간다. 시는 따뜻한 곳에 머문다. 세상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세상 한가운데 서서도, 그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둔다. 그 거리 속에서 그는 언어의 숨결을 느끼고,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린다.

 

『시경(詩經)』은 공자 시대부터 시의 경전이다. 그 안에는 왕과 백성, 사랑과 슬픔, 일상과 제의가 모두 담겨 있다. 『시경』의 시들은 언제나 따뜻하다. 사람뿐 아니라 식물과 나무, 바람과 강물까지 품는다. 시인은 세상 모든 것과 마음을 나눈다. 인간뿐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것에게 따뜻함을 건네는 것이 시인의 도리다.

 

시인은 예(禮)를 아는 사람이다. 그 예는 인간관계의 규범이 아니라, 생명을 향한 마음의 자세다.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풀잎 하나에도 시인은 인사를 건넨다. 그것이 바로 시례다. 예(禮)는 타인을 향한 공경의 표현이지만, 시인의 예는 세계 전체를 향한다.

 

시인은 사물의 존재를 귀하게 여긴다. 이름 없는 들풀에도 생명의 기운이 흐르고, 하늘을 스치는 바람에도 역사가 있다. 시인은 그것들을 언어로 불러내며 예를 드린다. “너는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순간, 시는 생명에 대한 감사의 기도가 된다.

 

우리는 언어의 시대에 살고 있다. 수많은 말들이 쏟아지고, 하루에도 수억 개의 문장이 세계를 떠돈다. 그 많은 말 속에서 진정한 말, 예를 지닌 말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말은 넘치지만, 마음은 비어 있다.

 

시는 고통의 시대에 위로의 언어로 존재한다. 시는 누군가를 설득하지 않고, 다만 함께 머문다. 그것이 시의 힘이다. 슬픔을 설명하지 않고도 위로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시다.

 

시인은 세상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낸다. 그 빛은 크지 않다. 그러나 한 사람의 마음을 데워줄 만큼은 충분하다. 언어의 빛, 그 한 줄기가 어둠을 조금이나마 물러나게 한다. 그래서 시는 늘 인간의 편에 있다. 시인은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그 곁에 머물며 손을 잡아준다. 고대의 제사장이 신에게 제물을 바쳤듯, 시인은 언어를 바친다. 시인은 세상과 신, 인간과 자연을 잇는 중간자다. 그의 언어는 기도이자 노래이며, 예배이자 고백이다. 시인은 자신의 언어로 세상에 시례를 내린다. 그것은 축복의 물을 뿌리는 일과 같다.

▲ 최창일 시인     ©성남일보

시인은 사라져가는 것들에게 언어의 물을 건넨다. 잊힌 이름, 버려진 마음, 침묵 속의 존재들에게 그는 시의 물을 적신다. 그렇게 시인은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든다. 시례란 언어 속에 잠겨 예를 배우는 일이다. 시인은 언어의 물결 속에서 자신을 씻고, 세상을 향해 온기의 손길을 내민다. 시의 언어는 세상을 치유하고, 인간을 다시 일으킨다.

 

시를 읽고, 시를 쓰며, 언어의 물가에 조용히 앉아 마음을 씻는 일. 그것이 곧 현대인이 잃어버린 예를 회복하는 길이다. 시인은 그 길 위에서 세상에 시례를 내린다. 언어의 물이 세상의 상처 위에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그 물결 속에서 인간은 조금 더 다정한 존재로 거듭난다. 시는 다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세례의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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