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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想과 인간
산성에 오르면 / 양애경 시인
성벽에 기대서면 천년 바람이 귓가에 스친다 잊힌 발자국들이 돌 위에 눕고 이끼 낀 시간의 틈새마다 돌 틈에 갇힌 시간 그 속에서 역사의 숨결이 산다
봄이면 진달래 붉게 타올라 피맺힌 결단, 꽃잎처럼 흩날리고 싸늘한 겨울, 하얀 눈 덮이면 패배와 의지의 흔적을 말없이 품는다
성의 안과 밖 삶과 죽음이 엇갈긴 선을 가른 돌담 수백 년 느티나무는 바람 속에 세 번의 왕을 회상한다
역사를 품은 채 내 안에도 한 성을 지킨다 무너지지 않으려 버티는 깊은 절망과 얕은 희망의 경계에서 하늘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산성의 기도다 ............................................................. 산성(山城)은 세월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말 없는 역사이자 민족의 기억이 잠든 장소다. 시인은 성벽에 기대선 채 ‘천년 바람’을 느낀다. 자연의 바람이 아니다. 흘러온 역사, 시간의 흐름, 수많은 생의 발자취가 스쳐 지나가는 상징적인 이미지다. ‘이끼 낀 시간의 틈새’, ‘돌 틈에 갇힌 시간’이라는 표현은 역사의 깊이와 잊힌 존재들을 떠올리게 하며,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과 사건을 상기시킨다.
봄이면 붉게 피어나는 진달래는 ‘피맺힌 결단’을 의미하며, 조국을 위해 산화한 이들의 희생을 상징한다. 겨울의 하얀 눈은 ‘패배와 의지의 흔적’을 덮고 있으나, 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더 강한 울림이 전해진다.
자연은 역사의 메타포가 되고, 계절은 시간의 무게를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성의 안과 밖’이라는 구절은 물리적인 경계일 뿐 아니라, 생과 사, 명예와 치욕, 승리와 패배 등 인간 존재의 양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성으로 확장된다. 누구나 자신만의 ‘성’을 지키며 살아간다. 그것은 때로는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서 무너지지 않으려 버티는 의지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산성은 말이 없다. 피와 눈물로 쌓은 세월, 우리가 짊어진 삶의 무게까지 깨우는 노래이자, 과거와 현재를 잇는 조용한 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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