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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까지 가보자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5/09/07 [09:47]

별까지 가보자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5/09/07 [09:47]

▲ 사진 / 픽사베이   

[최창일 칼럼] 하옥이 시인은 “문학을 한다는 것은 곧 언어의 씨앗을 심는 일이다” 했다. 혼자만의 글의 모종은 늘 황량하다. 씨앗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으려면 곁에서 함께 가꾸어 줄 동무가 필요하다. 

 

글쓰기 동행이 되어 준 벗을 시도반(詩道伴)이라 붙여 본다. 원고지 한 장을 앞에 두고도 마치 대륙의 지도를 펴는 듯한 눈빛으로 글자를 세우던 사람. 시도반을 처음 만난 것은 문학인 모임이었다. 그는 가방에서 연필로 빼곡히 쓴 원고지를 꺼내 들더니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언어는 흙처럼 만져봐야 한다지요. 흙이 손에 닿을 때 살아 있는 것처럼, 글자도 손끝에서 살아난다네요.”

 

그 말은 벼락처럼 다가왔다. 글을 머리로만 짓는다고 믿었던 시절이었는데, 그의 말은 언어가 살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이후 같은 글밭 은하 선생 곁에서 시를 나누었고, 삶을 배웠다. 그런 시도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한동안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죽음은 언제나 예기치 않게 찾아오지만, 글을 쓰던 이의 죽음은 특히 더 허망하다. 아직 쓰지 못한 문장들, 완성되지 못한 시들이 그와 함께 묻혔다고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버린다. 장례식장에서 그의 빈소 앞에 서 있었을 때, 그가 마지막으로 내게 보여주던 원고의 몇 줄을 떠올렸다.

“인생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과 같으니, 언어는 그 흩날림을 기록하는 것.”

 

이제 그 문장을 쓴 하옥이 시인은 별이 되었지만, 그 문장은 여전히 내 손에 남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글을 읽어도, 그의 낮은 목소리와 웃음을 되돌려 올 수는 없다. 부재는 이렇게 무겁고, 살아 있는 자의 기억은 무력하다. 그가 얼마나 문학의 별을 만들었는지 장례식장에 온 문우들의 슬픔을 건네는 모습에서 알게 한다. 주 선생도, 위 선생도 눈을 보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힌다.

 

삼삼오오 그가 남긴 말을 새긴다. 우리“집을 팔아서라도 문예지를 만들어요” “원고를 보내준 문우에게 일일이 전화를 주었다.” “밭에서 거둔 채소를 전해주기도 했다”라는 일화를 나눈다.

사람은 죽음으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살아 있는 자의 기억 속에서 그는 여전히 말을 걸어오고, 그가 남긴 책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부재는 분명한 현실로 남는다. 함께 니체를 논하던 밤길, 시집 발간을 앞두고 서로 흥분하던 순간, 그 모든 반복은 더는 불능하다.

 

시인을 보내고 난 후, 그의 시집을 펼치는 일이 잦아졌다. 활자 속에 새겨진 그의 언어는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죽음 이후에도 언어는 죽지 않는다. 오히려 남은 자의 가슴속에서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애도는 눈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애도는 언어로 이어지고, 문학이 곧 애도의 형식이 된다.

 

고대의 비가 시에서부터 오늘날의 산문시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언어를 통해 죽은 이를 기억하고, 그리움의 무게를 견뎌왔다. 시인은 떠난 자의 목소리를 다시 부르고, 독자는 그 목소리에 응답한다. 그렇게 문학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그가 만든 가곡과 시집에서 이런 구절을 다시금 읽었다.

“밤하늘의 별빛은 죽은 빛이라 하네. 그러나 그 죽음이 우리에게 길을 비춘다네.”

그의 시는 이미 자기의 죽음을 예감한 듯 보였다. 별빛처럼, 그는 떠났지만, 여전히 내 길을 비추고 있었다. 애도는 이처럼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동행일지도 모른다.

 

밤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은 그가 가장 사랑한 은유였다. 그는 언제나 별을 보며 “고독 속에서도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별을 바라볼 때마다 그를 떠올린다. 그가 별이 되어 내게 빛을 건네는 듯하다.

▲ 최창일 시인     ©성남일보

함께 걷던 문학의 길 위에서, 함께 웃던 인사동에서, 나는 그의 부재를 절감한다. 그러나 동시에 별빛처럼 이어지는 언어 속에서, 그가 여전히 함께 있음을 느낀다. 언젠가 나 또한 저 별의 자리로 갈 것이다. 그때 다시 만나, 밤새도록 언어의 씨앗을 나누고, 시를 읽고, 웃음을 터뜨릴 수 있으리라.

 

그날이 오기 전까지 그의 부재를 글로 메우며 살아갈 것이다. 원고지 위에 흩뿌려진 언어의 씨앗들은 곧 그의 흔적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문학이란 결국, 떠난 이와 남은 이를 이어주는 다리이며, 부재를 견디는 우리의 가장 깊은 형식이다. 

 

아 그리고, 하옥이 시인, “최은하 선생에게 안부 전해요”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 쓰기>의 이야기도 마저 들으세요. “하옥이 시인, 꼭 푸른 나이에 별까지 가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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