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칼럼]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문해력에 평생을 바쳤다.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였지만 동시에 정치가이자 과학자였다. 모든 영역을 아우를 수 있었던 힘은 문해력에서 나왔다. 괴테는 언어를 단순한 표현 수단으로 보지 않았다. 언어는 사고를 열고 세계를 이해하는 문이었다. 오늘날 스마트폰 화면과 짧은 자극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괴테의 문해력 집념은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언어를 얼마나 깊이 붙잡고 있는가?”
괴테의 문해력은 어린 시절부터 다져졌다. 그는 집안에서 성경을 반복해서 읽으며 언어의 리듬과 구조를 체득했다. 동시에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 법률 문서까지 접하며 어린 나이에 이미 복합적인 텍스트 세계에 익숙해졌다.
이 습관은 훗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 같은 작품의 토대가 되었다. 언어를 깊이 익힌 사람이 어떤 창작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괴테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를 배웠다. 그는 원전을 직접 읽고 비교하며 언어 차이를 통해 사고의 폭을 넓혔다. 괴테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또 하나의 영혼을 얻는다”라고 말했다. 이 다언어 문해력은 그가 ‘세계문학(Weltliteratur)’이라는 사상을 제시하는 밑거름이 됐다. 언어를 통해 세계를 보는 눈을 확장한 것이다.
괴테의 대작 『파우스트』는 그의 문해력이 만들어낸 결정체다. 이 작품에는 성경, 신화, 민속, 자연과학, 철학, 예술이 총망라돼 있다. 괴테는 평생 읽고, 쓰고, 사유한 결과를 언어로 엮어냈다. 『파우스트』는 단순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문해력의 집약체이자 인간 이해의 실험장이었다.
괴테는 문학인만이 아니었다. 그는 식물학, 광학, 해부학 연구에도 몰두했다. 주목할 점은 그의 과학 연구조차 언어를 통해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식물학 저서에서 관찰 결과를 시적 언어로 풀어냈고, 광학 이론을 전개할 때에도 뉴턴의 논리를 문학적 수사와 철학적 사유로 반박했다. 괴테의 과학적 탐구 역시 문해력의 산물이었다.
괴테의 문해력은 단순히 학문적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언어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고통, 사랑과 죽음을 집요하게 탐구했다. “인간은 이해한 만큼만 본다”라는 그의 말은 곧 문해력이 곧 인간 이해의 깊이임을 보여준다. 언어는 사람을 연결하고, 이해를 확장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오늘 우리는 정보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문해력은 오히려 무너지고 있다. 짧은 영상, 자극적인 문장, 피상적인 해석이 사람들의 사고를 잠식한다. 괴테가 던지는 물음은 분명하다. “문해력이 없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버틸 것인가?” 사회적 갈등과 혐오, 거짓 뉴스의 확산은 문해력이 약화한 증거다. 언어를 읽고 비판하고 성찰하는 힘이 약해진 사회는 쉽게 흔들린다.
괴테는 언어를 다스린 자였다. 문해력을 통해 세계를 열었고, 인간을 이해했으며, 시대를 넘어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다르지 않다. 문해력의 부활이다. 언어를 깊이 읽고, 생각을 다지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개인도 사회도 설 수 없다.
괴테의 삶은 말한다. “언어를 아는 만큼 인간은 자유롭다. 문해력을 확장하는 만큼, 세계는 넓어진다.” <저작권자 ⓒ 성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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