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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음성을 듣는 나라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4/04/19 [08:08]

신의 음성을 듣는 나라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4/04/19 [08:08]

[최창일 칼럼] 이스라엘과 이란은 왜 이토록 전쟁의 그림자를 껴안고 살고 있을까. 애초 이렇게 나빴던 것은 아니다. 팔레비 왕조(1925~1979) 때 이란은 이스라엘과 그리고 미국과 우호적이었다. 이란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이슬람권 국가로 튀르키에 이어 두 번째로 인정했다. 이란이 1979년 이슬람 혁명 후에도 관계는 그리 험상하지 않았다. 

 

양국이 이렇게 된 것은 이스라엘과 이란 전쟁(1980~1988) 후 이란이 레바논·예멘·시리아 등에서 반이스라엘 단체를 지원 하면서다. 

▲ 사진 / 픽사베이

먼저 역사적으로 성경 안의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스라엘은 히브리어로 Sra(싸우다, 겨루다)와 EI(하나님)의 함성어다. 구약 창세기 32장에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은 형, 에서와 장자 상속권을 놓고 불화를 빚는다. 야곱은 화해하려고 형을 찾아가던 도중 얍복강 나루터에서 낮 선 사람과 조우한다.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한다. 낯선 사람(하나님)은 싸움이 끝난 뒤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야곱의 후속인 이스라엘은 바로 하나님과 겨룬 민족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독특한 사상과 우주관, 인간관은 구약에 잘 드러나 있다. 성서는 네페시Nefesh영(靈)과 Basar육(肉)으로 이루어진다. 정신 물리학적인 유기체를 인간 앞에 제시한다. 

네페시는 히브리어로 목구멍이라는 뜻이다. 또 휘파람, 입맛, 갈망으로도 해석된다. 인간의 숨결은 목구멍을 지나야 제구실을 하기에 네페시는 ’살아 있는 나‘ ’살아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이처럼 네페시는 살아 있는 존재의 생동력 자체였고, 마음속에 파고들어 자연스럽게 이스라엘 민족과 나아가서 인간의 마음속에 음악으로 승화되었다. 

▲ 최창일 시인     ©성남일보

네페시는 바사르를 통해야만 합치된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고집스러운 사상이다. 그러기에 육체의 여러 기관이 네페시와 한 덩어리가 되어 천상(天上)의 길을 찾아가는 인간을 성서는 묘사하고 있다.

 

신체기관은 늘 물질과 정신 양면적인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돌로 된 심장(마음)이 되지 말고 ’살로 된 심장’이 되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마음을 열지 못하게 가로막는 포경을 제거하기에 앞서 ‘심장(마음)의 할례’를 일깨웠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콩팥은 은밀한 생각 ‘감추어진 느낌’, 간은 ‘비위에 거슬린다’, 창자는 넋의 뜻으로 사용했다. 피 귀 뼈 등도 인격의, 일부를 압축한 형태로 나타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중요시한 것은 네페시-바사르보다 루아(Ruah, 신령, 신의 숨결)였다. 루아가 없다면 네페시-바사르 복합체가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의 밑바탕이다. 또 루아는 인간을 지탱해주는 활력으로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이 야곱 이후 이스라엘 민족 안에 면면히 흐르는 신념이었다. 

 

루라의 숨결은 이스라엘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유럽문화를 지배했다고 할 수 있다. 또 루아의, 성령의 숨결은 중세 종교음악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마음을 이끄는 것들이 오늘의 이스라엘을 존재하게 하는 힘이다.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이란은 정신의 이스라엘을 송두리째 인정하지 않는 결과로 보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의 그림자는 미국의 지원이나 전쟁의 도구에 앞서 그들의 심중에 면면히 흐르는 신의 음성과 관련이 크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쟁은 세계의 경제에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11월 미국의 대선에 영향을 끼친다. 한국의 유가는 물론, 물가에 지대한 결과를 갖는다. 세상의 미래는 이스라엘의 총리, 네타냐후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에 시선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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