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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한 방울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4/01/16 [19:21]

눈물 한 방울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4/01/16 [19:21]

[최창일 칼럼] 물음표와 느낌표의 사이를 헤매다가 떠난 이어령(1934~2022) 교수다. 선생의 마지막 노트에 남긴 말은 ‘눈물 한 방울’이라는 박애 정신이 들어간 은유였다. 

 

“눈물만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증명해준다. 낙타도 코끼리도 눈물을 흘린다고 하지만, 정서적 눈물은 사람만이 흘릴 수 있다.”라 한다. 선생은 제아무리 로봇을 잘 만들어도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한다.

  © 사진 / 김연집 작가

선생은 눈물에 대하여 생각을 많이 하였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 멸망해가는 예루살렘 현실에 눈물을 보였다. 공자 선생은 가장 아끼던 제자, 안회(顔回)의 죽음과 골짜기에 외롭게 피어 있는 난초 한그루를 보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 석가모니는 길거리에 늙고 죽어가는 사람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선생이 보는 세상은 앞선 선학과 신령한 분들의 눈물을 보면서 우리가 살고 세상이 눈물이 메마른 사막에 살고 있음을 아쉬워하며 눈을 감았다.

 

선생은 가난한 시대와 피 흘린 혁명도 경험하였다. 땀 흘려 경제도 부흥해봤다. 딱 하나 경험하여 보지 못한 것이 눈물이다. 즉 박애의 눈물이다. 나를 위한 눈물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을 이르는 것이다. 눈물은 인간의 체온이 담긴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의 논리를 가지고 생존해 갈 수 없는 시대를 맞이했다. 피와 땀이 하나 되어야 하루 천 리를 달린다는 한혈마(汗血馬)가 된다. 현실은 대립이다. 분열이다. 대립과 분열의 피눈물로 바뀌고 있다. 

 

관용의 전제가 ’눈물 한 방울‘이다. 나와 다른 이도 함께 사는 세상이 관용의 세상이다. 선생은 딸이 암으로 먼저 별이 되는 아픔을 맞았다. 거기에는 눈물 한 방울이 아니라 새벽이면 흘리는 눈물이 있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자신감에 살았던 선생도 딸의 죽음 앞에는 예수, 공자, 석가모니의 마음을 이해하였다.

 

무신론자인 선생은 초승달이든 보름달이든 우리는 달의 한 면밖에 볼 수 없다는 깨달음의 해안을 갖는다. 50년 문단 생활에 처음으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시집을 펴낸다.

 

“인간은 달의 경우처럼 죽을 때까지 남이 볼 수 없는 이면을 가지고 삽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그러나 상상력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라는 느낌의 선적인 말을 하게 된다. 선생은 생의 마감 시간에는 시를 많이 쓰고 시의 평론집을 내기도 했다. 

 

선생은 올림픽에 굴렁쇠를 굴리게 하여 세계인의 이목을 만들었다. 그런 번뜩이는 사람들이 신을 가슴에 품는 것이 시간이 걸린다. 선생은 거기에 해당한다. 선생에게 시는 반물질이었다. 

 

사실적인 것, 물질적인 것, 만질 수 있고 견고한 것, 시는 이러한 언어적인 물질과 결합한다고 보았다. 시를 쓰면서 달의 보이지 않는 뒷면을 보게 된다. 시를 통하여 거친 모래알들을 화약처럼 폭발시켜 불꽃을 만드는 법을 전했다. 김소월 시인의 시의 해석을 새롭게 하기도 했다.

 

“시는 후회를 낳고 후회는 시를 낳습니다. 그래서 나의 첫 시집은 조금은 부끄럽고 조금은 기쁜 빛의 축제처럼 즐겁습니다.”라는 말도 하였다. 

▲ 최창일 시인     ©성남일보

시인은 한때는 연예인처럼 살았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시절이다. 이대의 후문 쪽에 사시던 젊은 시절. 방송을 마치고 화장을 지우지 않고 카페에서 대화하던 선생이 기억된다.

 

그날의 선생의 시간은 화려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첫 시집을 내던 2008년경, 선생에게 ’눈물 한 방울‘이 고이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시집의 첫 문장은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바친 적이 없으니/ 절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로 시작된다. 

 

얼마나 직설적이며 심정을 드러낸 시어인가!. 

 

선생의 시어는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아니다. 깊고 깊은 산골 학교 풍금 울림 같다. 그의 강의와 초대문화부 장관 시절이나, 문학사상 발행인 겸 대표 시절에도 분명 세상을 움직이는 석학이었다. 눈물을 생각하는 시간에는 석학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신비한 잠언의 시를 만들었다.

 

그의 시를 들어 잠언의 선시(禪詩)라는 이도 있다. 분명 시는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통찰의 시인이었다. 예수와 공자가 은유를 즐겼듯 선생은 인생의 모습을 ‘눈물 한 방울’이라는 잠언의 시어를 남기며 별과 악수 하였다. 여러분 안녕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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