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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을 걸어가는 시도반에게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3/05/04 [22:10]

순례길을 걸어가는 시도반에게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3/05/04 [22:10]

[최창일 칼럼] 칠흑의 시간, 벽에 기댄다. 때론 삶이 벽을 기대며 위로를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일상이 허무하면 위스키가 눈과 위장을 씻어주는 갈증의 사실도 알게 한다. 내밀한 얘기를, 시(詩)에게 기대는 것도, 어떻게 사는 것인가를 알게 된다. 

▲ 산티아고 순례길 전경.   © 성남일보

시는 돌멩이에 날개를 달게 하여 날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시는 침묵을 멈춰 서게 하여 심장에 감동 주는 것을 용맹으로 여긴다.

 

김춘수 시인은 거울 속에서 천사를 만난 일이 있다. 

 

거울 속에 그가 있다./ 빤히 나를 본다./ 때로 그는 군불아궁이에/ 발을 담근다. 발을 데지 않고/ 발이 군불처럼 피어난다./오동통한 장딴지,/ 날개를 접고 풀밭에 눕는다./ 나는 떼놓고/ 지구와 함께 물도래와 함께/그는 곧 잠이 든다./ 나는 아직 한 번도/ 그의 꿈을 엿보지 못하고/ 나는 아직 한 번도/누구라고 그를 불러 보지 못했다.‘ 

 

김춘수 시 ’천사’ 전문이다. 시인에게 천사는 하나님이 보낸 사람으로 알고 지냈다. 알고 보니 김춘수 시인이 거울 속에 보내준 것을 담쟁이 물오른 봄날에 알게 되었다는 실화의 시를 남긴다. 그 천사는 발이 군불처럼 피어나고 오동통한 장딴지를 가졌다. 

▲ 최창일 / 시인     ©성남일보

시인에게 천사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오동통한 장딴지 천사만 보았다. 참으로 신기하다. 천사를 보고도 누구라고 불러 보지 않는 인내가 가상하다. 시인의 천사는 품이 크다. 지구를 안고 지구를 돌리는 물도래를 함께하고 잠이 든다. 

 

김춘수 시인이 천사의 시를 만든 것은 아내가 곁을 떠난 지 2년이 되어서다. 시인은 함께 사는 시간보다 아내가 떠난 2년의, 시간 속에서 소중한 것을 알게 해주었다 말한다. 헤어짐은 만남의 다른 모습이라 한다. 시인은 천사라는 말을 호주 선교사가 유치원에서 들려주었다. 그 말은 낯설고 신선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릴케의 천사를 읽게 되었다. 릴케의 천사는 겨울의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천사였다. 역시 천사는 낯선 대상이며 신선했다. 세 번째 천사를 만난다. 아내는 곁을 떠나자 천사가 되었다. 다시 낯설고 신선하다. 아내는 지금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아내는 그런 천사다. 

 

김춘수 시인만이랴. 이 땅의 시인은 마음에 천사를 지니고 산다. 시도반 또한 그렇다.

 

시인은 천사가 없으면 시를 만들지 못한다. 천사는 거울이 되고 느낌의 천사로 나타난다. 아무렇지 않은 말이 씨로 남아서 시가 된다. 한밤중 천사의 말은 중력을 가진 시가 된다. 산다는 것은 사랑받는 것, 일상의 순간이 모든 천사의 숨결이 스미고 환한 세상이 된다.

 

세상에 마주 본다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은 왠지 흐뭇하고 왠지 넉넉해지는 그런 시간이다. 앞자리가 비고 햇살이 앉아도 좋다. 빛이 천사가 되어 웃는 얼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천사를 보고 있으면 열매의 위쪽이 보인다. 열매의 위쪽에는 달빛이 있고 고흐의 별이 뜨고 있다. 그곳에서 천사와 같이 마주한다. 

 

천사, 시도반(詩道伴 시 공부 자)이 순례의 길에서 시를 만나겠다고 떠난다. 순례의 길을 걷는 천사는 내 앞에 펼쳐진 단조로운 풍경과 황량한 평야의 소리를 들을 것이다. 마음은 바람과 논의하고 시의 가운데를 걸어갈 것이다.

 

그곳에 어느 누가 말들을 만들어 내려놓고 갔는지. 그 말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배냥에 담을 것이다. 밤이 내리면 바람에 지워지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사막에 발자국을 남긴 낙타는 바람이 지워주는 것을 알듯이 말이다.

 

걷는 것은 영적인 탐색이란 말도 있다. 이 땅의 수행자는 걸었다. 걷지 않는 수행자는 허위를 걷는다. 산티아고의 길은 신(神)만의 것이 아니다. 걷는 자의 것이다. 그 길에서 얻어지는 것은 걷는 이의 시가 된다. 

 

열정을 깨워줄, 무엇인가 만지는 시간이다. 천국 문의 열쇠는 열정을 쏟아 행하는 일속에 있다. 그곳에서 살아갈 변화를 기록하고 신에게, 한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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