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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권 칼럼] 유관순 열사는 1916년 충남 공주시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미국인 감리교회 선교사 추천으로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으로 편입해 1919년에 고등부에 진학했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 이름으로 서울 태화관에서 독립선언 후 학생들과 국민들이 서울 탑골공원에 모여 별도의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거리행진에 나섰다.
유관순 열사는 3, 1절 탑골공원 시위에 참여했고 총독부 휴교령으로 인해 고향 천안으로 내려와 부친 유중권의 주선으로 3월 9일 교회 예배가 끝난 뒤에 마을 유지 조인원 이백하 등 20여 명을 설득해 경성에서 일어난 시위과정을 설명하고 계속해서 관내 유지들과 유림 들을 만나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시위할 것을 제안했다.
드디어 4월 1일 당일 수천 명이 모인 아우내 장터 선두에 서서 애국 연설을 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고 군중들을 이끌다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일경은 그가 미성년임을 감안하여 주동자 수사에 협조하면 선처하겠다는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고 스스로 주동자임을 자처하고 재판에 임했다.
아우내 장터 시위 중 그의 부모는 일본 헌병 총칼에 피살당했고 가정은 파탄되었으며, 당일 시위에서 19명이 사망하고 다수 부상자가 발생했다.
공주지방법원에서 5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해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이 확정 복역 중 서대문형무소 옥중에서도 계속 만세를 부르다 모진 고문으로 방광파열로 1920년 9월 28일 19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고 19967년에는 이화여자고등학교 명예 졸업장을 받게 된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 생가가 복원되고 사적 제230호 지정되어 오늘까지 유지되고 있다.
3.1독립운동은 일제 강점기에 있던 조선인들이 일제 지배에 항거해 1919년 3월 1일 한일 병합 조약의 무효화와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운동으로 시작한 사건으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조선총독부 발표에 따르면 당시 조선 인구는 총 1,678만 8천400명이고 집회 인원수는 106만명, 그리고 사망자 .900여명, 구속자 4만 7천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항일 시위였다.
대한제국 고종이 일제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고종 인산일 (장례일) 3월 1일에 맞추어 민족종교인 천도교 손병희대표가 주동이 되어 기독교 대표 불교 대표 33인이 발기하고 독립선언서를 최남선이 초안을 만들고 이광수가 교정을 보아 완성된 독립선언서는 전국적으로 반포되어 거의 1년 동안 시위가 진행됐다.
그중 수원시 향남면 소재 감리교 제암리 학살사건은 일제가 행한 가장 잔인한 진압행태로 3월30일 제암리 인근 주민 천여 명이 제암리 발안 장터에서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시위를 했다. 그 과저에서 시위대 몇 명이 일본 경찰에 의해 사망하자 시위대는 일본인 주택과 학교를 불태웠고 그 보복으로 제암리교회에 23명을 가두고 불질러 사망케 한 사건도 발생했다.
유관순 열사 그의 애국정신을 오늘에 이어받아 우리의 할 일은 애국정신 함양으로 우리는 실종된 나라 주인정신(主人精神)을 시급히 다시 찾아야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지금 이 나라는 주인정신 상실증세(喪失症勢)가 너무나 심각하다.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실려 온 처지라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유관순 열사의 깊은 뜻을 잃어버린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임을 생각할 때 우리 모두 대오각성 애국 주인정신과 책임의식을 다시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주인정신이란 스스로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한 생명체에 속한 세포 분자 조직으로 나 한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것에서 주인정신이 시작된다.
쉽게 말하면 책임의식과 보은(報恩)정신이다. 나는 이 나라에 또는 이 직장에, 이 가정에,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인가.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인가? 있어서는 않되는 사람인가. 스스로 판단하면 답이 나온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책임의식과 은혜에 보답하는 정신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나의 생육을 돕는 자연의 은혜, 나의 심신을 지켜주는 국가의 은혜, 부모님 보살핌의 은혜, 스승과 선지자 가르침의 은혜, 의식주를 제공하는 사회의 은혜, 서로 상생의 원리를 배우는 벗들의 은혜를 아는 것이다.
지금 우리 모두의 처지에서 나라 사랑 실천방법에는 여러모로 표출할 수 있으나 그중에 제일 쉽고 실행이 편한 것은 태극기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각기 집안에 태극기를 반드시 소장하고 국가 경축일에 게양해 국위 선양과 국민 단합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국가에 대한 국민의 보은에 최소한 기본길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짧은 인생에서 태극기 물결을 세 번 경험했다. 나의 고향은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벽촌이다. 해방되고 어느 날 그 귀한 소를 잡아 동내 잔치하며 마을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나와 만세를 부른 장면과 6.25사변 9.28수복 당시 북진하는 U.N군을 수많은 인파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장면이다.
최근에 광화문에서 전개되는 태극기 물결 그 태극기 물결은 우리에게 분명 번영과 행복을 전하는 우리의 수호신이라 나는 분명히 믿는다
나는 7살, 감격의 해방을 맞이했을 때 어머니께서 태극기를 대문 위에 거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되된다. 태극기여 영원하라! <저작권자 ⓒ 성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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