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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일 칼럼] 시인의 눈에는 빛도 실타래 감듯 비유한다. 언어의 건축인들이다. ‘여로(旅路), 황금빛에 감기다’라는 맹숙영 시인의 포토 시집이 그렇다. 시인의 발길은 보통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발끝의 서사(書史)다. 눈(眼)의 전도서다.
보통 언어의 건축이라면 ’황금빛에 물든다’라는 실상의 표현이 맞다. 맹숙영 시인은 ‘황금빛에 감기다’라는 다소는 낮 설며 우아한 언어 창작이다.
흔히 시를 쓴다고 소개하면 사람들은 “시인들은 영감(靈感)이 온다지요.” 질문을 받곤 한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신 내린 사람처럼 시가 영감으로 찾아오는 것으로 상상한다.
시인에게 영감은 없다. 절대 그저 오지 않는다. 영감은 시인이 찾아 나서는 길고 험한 세상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영감이 있는 곳으로 시인의 발끝이 가고, 또 다가가는 것이다.
맹숙영 시인의 포토 시집이 바로 그러한 질문의 답을 전하고 있다. 맹 시인은 돈독한 예수님의 제자다. 시인에게 예수님의 제자라 말하는 것은 예수님은 비유의 명수다. 어이없는 죄인을 만나서 설득한다. 방법은 비유를 들어가며 이해를 구한다. 그래서 교회를 나가지 않아도 성경을 읽으면 시가 보인다고 권일송 시인은 말한다.
시인은 예수와 같이 은유와 직유로 세상을 설득하고 청정(淸正)한 길로 안내하는 사람이다. 맹 시인의 포토 시집, 시인의 말에는 인간과 신과의 이분법적 관계, 또는 삼분법적 관계라는 독특한 논리를 펴고 있다.
여행하면서 맹 시인은 자연을 창조한 신과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거나 신의 입장을 충분하게 이해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독자는 이 같은 문제를 고스란히 만나게 되는 복을 누린다.
맹 시인은 일명, 추기경의 광장, 로마 성베드로 성당 광장에 도착한 것은 부활절(4월) 아침이다. 시인은 영감을 찾아 나선 출발이다. 그곳에서 시인은 영감을 만나고 신과 조우(遭遇)한다.
시도반은 코로나 19가 시작하기 전, 로마 광장을 다녀 왔다. 8월의 광장이었다. 광장은 텅 비어 있었다. 제아무리 영의 세계가 뛰노는 광장이라 하여도 8월의 로마 광장은 작열하는 더위로 비어 있었다. 맹 시인이 찾은 성베드로 부활절 광장은 다르다. 추기경이 광장의 중앙에서 부활절 메시지를 전한다.
역시 여행도 기획이란 생각이 든다. 추기경이 없는 성베드로 성당의 광장은 아무래도 허전하다.
‘부활의 승리/ 놀라워라 주님의 권능!/ 죽음의 권세 이기셨도다/ 하늘엔 영광찬란/ 땅 위의 기쁨/ 온 누리 충만하도다’ 맹 시인의<부활의 아침> 시 전문이다.
시인의 영감은 숲속에서 만나지 않는다. 사람이 많은 광장도 아니다. 오로지 시인만의 마음의 광장에 임하는 것이 영감이다.
<로마 2>의 시에서는 ‘걸어가는 발밑/ 거의 모든 땅이 유적 유물/도시 전체가 볼거리 많은 / 지붕 없는 박물관 보물 창고// 지상에서 신들이 가장 선호하던 땅이었나 보다’ (중략)
시인은 신이 로마를 선호하던 장소로 보고 있다. 신(神)도 어디엔가 마음 둘 곳을 찾게 된다. 그것은 시인만이 영감으로 관통하는 세계다.
이쯤 되면 시인에게 영감이 어떻게 오고 있는가를 맹 시인의 시적 언어 세계를 통하여 배우게 된다. 300페이지가 되는 포토시집이다. 수려한 사진이 시를 안내하고 있다.
낮 선 풍경을 맹 시인의 여행 전도서를 통하여 감상하는 것이 행복이다. 여행은 작은 모험이 된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장면이 눈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여행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었을 뿐인데 이미 있었던 것이 지금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시인에게 영감은 여행에서, 마음에서 이루어진다. 떠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걸었다. 예수님도 로마의 광장과 갈릴리 바닷가를 걸었다. 영감은 어디에 있는가? 그 답이 궁금하다면 맹숙영 시인의 ‘여로, 황금빛에 감기다’의 여행길 사사에 따라나서 보는 것이다. <저작권자 ⓒ 성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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