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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립스틱을 사랑한 동박새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2/01/21 [10:21]

새빨간 립스틱을 사랑한 동박새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2/01/21 [10:21]

[최창일 칼럼] 눈발이 날린다. 동백꽃 피면 찾아주던 동박새가 왔다. 동백이 핀 걸 모르고 지냈다. 무심했다. 일 년 내내 얼굴 비추지 않던 동박새. 동백이 빨강 루주를 바를 때쯤, 여지없이 찾아왔다.

 

동백꽃에 동박새는 절친 친구다. 곤충이 없는 겨울철, 동백꽃에 열매를 맺게 하는 유일한 중매쟁이다. 동박새는 이 겨울에 꽃이 피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다.

고향 마을에는 자근 이라는 거지가 살았다. 가족을 거느린 거지였다. 고향 근방에서는 자근이 하면 모른 이가 없었다.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 제삿날에 여지없이 찾아와 나물거리를 동냥하여 간다. 동박새를 보면 고향의 자근이 생각이 난다. 어디에 살다가 동백이 피고, 눈 내리는 겨울에 다시 찾아주는지.

 

동박새는 동백꽃의 수술 속에 머리를 박고 달콤한 꿀에 정신을 놓는다. 동박새의 이마에 동백꽃의 노란 분이 묻어있다. 커피 라떼를 먹다 입술에 하얀 거품이 묻은 모양새다.

 

김유정의 동백꽃 소설의 점순과 동출(나)도 생각난다. 점순은 동출에게 찐 감자를 건넨다. 동출은 따듯한 감자의 의미를 눈치채지 못하고 점순이 준 호의를 밀치고 자리를 피한다. 

 

점순은 자신의 속내를 몰라주는 동출의 닭에게 앙갚음을 시작한다. 점순의 닭은 동출의 닭을 피 흘리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피를 흘리는 동출의 닭을 보고 화가 잔뜩 나서 점순네의 닭을 죽여버린다. 동출은 순간의 감정을 누르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울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점순은 닭을 죽인 것을 걱정을 말라 한다. 다시는 그러지 말자 한다. 순간 무언가 밀린 듯 점순은 동출의 어깨에 기대며 쓰러진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은 붉은 동백보다 더한 사랑이 겹친다. 점순의 하얀 저고리 등 뒤는 노랗게 꽃물이 들고 만다. 향긋한 동백의 향기에 동순은 땅이 꺼지는 듯, 알싸하고 혼미의 정신이 되고 만다.

 

소설에는 노란 동백꽃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동백꽃은 생강나무의 꽃이라 한다. 김유정 문학관은 이 같은 해설을 해주고 있다.

 

억센 산골 계집아이 같은 생강나무에 눈이 간다. 생강나무는 무채색의 겨울 산 풍경에 제일 먼저 봄의 소식을 알린다. 봄을 알리기 위해 경주하는 풀은 복수초, 제비꽃, 얼레지를 꼽는다. 매화, 영춘화, 산수유, 개나리는 사람들의 눈길 속에 피는 동네 꽃이다.

▲ 최창일 / 시인     ©성남일보

봄의 산에 생강나무는 유일하게 봄 산의 배달부다. 생강나무는 성미가 급하다. 질주하고 싶은 마음으로 일단 노란 머리를 내밀고 본다. 너무 서두른 탓일까. 꽃자루도 짧다. 아직 덜 뜬 겨울 모자를 집어쓰듯, 다소 어색하다. 제대 군인처럼 더벅머리다. 아이들의 손바닥만 한 이파리는 일정하게 찍어내는 붕어빵 같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산소 가는 길, 봄비에 젖은 생강나무가 처연한 모습이다. 나무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봄비가 생강나무의 몸통을 온통 적신다.

 

어느새 봄을 재촉하는 파릇파릇한 풀들이 연둣빛 물을 들인다. 건넛마을 앞길이 아슴아슴 아스라하다. 배고픈 들 까마귀가 성묘객이 떠나기 무섭게 제사 음식을 나눈다. 그러다가 사람이 뒤를 돌아보면 소스라치게 놀라 훌쩍 날아 무덤에 둘러선 소나무에 올라가 사람들이 가길 기다린다.

 

대오에 이탈한 외기러기 한 마리가 울고 있다. 부모의 품을 떠나 혼자 건너는 세상살이, 차고 시리다. 그래서 우는 소리가 목이 메어 자꾸만 눈물이 난다. 문득 살아계실 때 잘해 드리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회한의 시간이 된다. 동생들도 같은 마음인지 차에 시동을 걸고 한참을 달리는 동안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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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로시인 2022/01/21 [14:58] 수정 | 삭제
  • 겨울을 사랑하는 새 동박새 그 동박새가 사랑하는 꽃이 동백꽃인가 시인들은 새를 사랑하고 꽃을 사랑하고 별을 사랑한다 물론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만 시인은 마음에 생각의 주머니 하나쯤 더 갖고 사는 사람같다 겨울에 내리는 눈 속에서도 수많은 인연을 찾아낸다 몇년전 김유전 문학관에서 특별한 변사를 만났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찌나 구성지게 활동사진 설명하듯 잘하는지 김유정 문학관 하면 그 변사만 떠오른다 오늘 칼럼은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겹치지만 겨울은 마음을 정화시키고 정신을 꽃피우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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