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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끝이 지구를 살린다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1/05/12 [08:17]

발끝이 지구를 살린다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1/05/12 [08:17]

[최창일 칼럼] 할아버지가 들려준 우화 한 토막. 부지런하고 마음씨 착한 농부가 살았다. 농부는 열심히 땀 흘리고 일하는 것이 취미와 같았다.

 

하지만 삶의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여행도 하고 하와이 풍의 야자수 가 그려진 옷을 입는 여유의 표정들이 자신의 삶과 비교 되었다. 에라~ , 마음을 가라앉힐 겸, 명상 하는 마음으로 산길을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산신령을 만났다. 산신령에게 이런 저런 마음을 털어놓았다. 신중하게 듣던 산신령은 농부에게 제안을 했다. 

▲ 마로니에 나무 / 최창일

내가 신던 구두를 줄 터니 그것을 가지고 하산을 하여라. 내가 마음이 울적 할 때면 구두를 신으면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어디든 갈수 있는 구두다. 농부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기쁨으로 구두를 소중하게 가슴에 안고 내려왔다. 

 

농부는 다음날 구두를 신었다. 산신령의 말처럼 농부는 순간 이동을 하는 것처럼 달릴 수 있었다. 그가 꿈꾸던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산신령이 준 신발은 얼마나 빠르게 달리는지 봄은 어느새 농부의 곁에서 사라져 갔다. 잃어버린 봄, 소리 없이 침묵하는 봄, 결코 우호적일 수 없는 봄을 위하여 내가 보내야 했던 시간들이 스치고 지나가버렸다. 봄이면 논과 밭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시간은 농부에게는 만가(輓歌)와 같은 시간. 이따금 논밭을 일구고는 독한 귀로의 술로 흥얼대던 나날도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한동안 농부는 자신이 일구는 농사의 시간은 잊은 채 신령이 준 신발을 신고 한없이 달리고 달렸다. 그런대로 여유자작 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산신령이 준 신발을 신고 여행하는 재미에 신이 났지만, 신발을 신으면 천천히 걸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순간이동을 하듯 빠르게 달리기만 했다. 

 

농부는 농사를 지으면서 이곳저곳 작물의 성장을 살피면서 천천히 걷는 것이 생활이었고 습관의 삶이었다. 

 

 

하나가 만족되면 하나를 잃는다는 교훈이 맞았다. 산다는 것이 화려한 모순, 생의 복판을 살면서 한 번도 자신의 미소를 띠어 본적이 없는 시간으로만 여겼다. 아끼는 욕망이 진정한 삶이라는 것도 미처 몰랐다. 인생에 걸었던 기대를 만족 시키는 것만이 성공의 태도로 보았다.

 

농부는 또 다른 삶들이 나를 기다리고, 또 다른 사랑들이 어디엔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살았다.

온종일 나란히 함께 앉아 있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엔가 살고 있다는 상상이 농부에겐 있었던 것. 

 

문득 할아버지가 들려준 임어당(1895~1976. 중국소설가)의 말이 생각났다. 즉 어떤 종류의 꽃은 어떤 종류의 사람과 즐겨야 하고 어떤 종류의 경치는 어떤 여성을 연상해야 한다. 

 

그렇다, 빗방울 소리를 마음으로 즐기려면 심산(深山)의 어느 절간에서 절간 죽상(竹床)에 드러누워 들어야만 한다.

▲ 최창일 / 시인     ©성남일보

그래서던가. 법구경(法句經)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갖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을 갖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인간에겐 누구에게나 소외의식, 단절감, 불안, 고독이 엄습하는 법. 타인의 모습을 나와 비교할 때 불행은 시작 되는 법이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마라톤 선수 아베베 비킬라(에티오피아. 1932~1973. 17, 18회 올림픽 2연패 금메달)는 41살로 요절 했다. 사망의 요인은 빨리 달리기 위해 심장을 너무 많이 혹사한 결과다. 

농부에 삶은 발끝의 생이다. 농부의 발끝은 지구를 살리는 식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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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로시인 2021/05/12 [22:22] 수정 | 삭제
  • 발끝이 지구를 살린다
    전설처럼 달리던 사람 아베베를
    시인의 펜끝에서 만난다

    어릴때 이 아베베에 관한 소문은 지금처럼
    메체가 발전하기 전이었지만
    거의 소문으로는 날으는 것처럼 빠르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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