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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진달래 그늘 아래로 온다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1/03/02 [07:14]

봄은 진달래 그늘 아래로 온다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1/03/02 [07:14]

[최창일 칼럼] 봄바람은 견딜 수 없는 것들. 봄은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봄의 소명이다. 아직은 진달래 분홍신에 찬바람이 어슬렁거리지만 그래도 봄의 거리로 나가고 싶다. 

 

을지로 입구 롯데호텔 앞 ‘푸시킨 플라자’앞에 가면 2013년에 세워진 푸시킨 동상이 있다.

 

한손에는 깃털 펜과 또 한손에는 노트를 들고 서있다. 고뇌어린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입상이다. 민관합동기관인 ‘한.러대화’가 국내에 푸시킨의 동상 건립지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롯데가 선뜻 장소를 제공하여 세워졌다. 롯데그룹명이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작중 인물 ’롯데’이듯 문화 사업에 적극적이다. 

롯데그룹은 러시아 현지법인 롯데루스를 기반으로 러시아내 신진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푸시킨 문학상‘을 제정하여 한.러 문화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푸시킨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시인이다. 그가 모스크바 거리에 남긴 일화 또한 인터넷 대화방에 돌아다닌다.

 

푸시킨이 모스크바 광장을 지나다가 남루한 차림과 추위에 떨고 있는 거지를 만났다. 거지는 ”얼어 죽게 되었습니다. 한 푼 도와주세요” 애걸했다. 행인들은  멀지 감치 거리를 두고 지나쳐 버렸다. 한참을 지켜보던 푸시킨이 다가가 말했다. “나는 주머니가 비어있는 시인입니다. 돈이 없소만, 글씨 몇 자를 써서 주겠소.”

 

얼마 후 친구시인과 함께 그 자리를 지나는 푸시킨에게 손을 내밀었다. “선생님 목소리를 들으니 며칠 전 그분이시군요. 그날 이후부터 돈이 수북해 졌습니다. 무슨 글을 써주셨습니까?”

 

푸시킨은 가볍지만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별거 아닙니다. ‘겨울이 왔으니 봄도 머지않으리’라고 썼습니다.”

 

푸시킨이 ‘별거 아닌‘ 문구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1972~1822)의 ’서풍(西風)에 부치는 노래‘마지막 구절이었다.

 

오, 나를 일으키려마, 물결처럼, 잎새처럼, 구름처럼!/우주 사이에 휘날리어 새 생명을 주어라!/그리하여, 부르는 이 노래의 소리로,/영원의 풀무에서 재와 불꽃을 날리듯이,/나의 말을 인류 속에 넣어 흩어라!/내 입술을 빌려 이 잠자는 지구 위에/예언의 나팔 소리를 외쳐라! 오, 바람아./겨울이 오면 봄도 머지않으리.(전 5부 중 마지막 구절)

 

푸시킨은 봄도 ‘오면’을 ‘왔으니’라고 바꾼 것이다. 푸시킨은 자유로운 언어를 사용하는 강직, 저항 시인이었다. 러시아 황제의 미움을 사 유배와 검열을 당하기도 했다.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애송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마음은 미래에 바라보니/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지나가 버린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푸시킨이야말로 희망과 꿈을 위해 전부를 거는 삶이었다. 그는 시인이라면 마음의 절망을 버리고 희망을 가득 채우는 삶을 소망하였다.

 

시인과 걸인에 얽힌 일화는 1920년대 뉴욕에서도 있었다. ‘저는 앞을 보지 못합니다.’ 그때 지나가는 사람이 팻말의 글귀를 바꿔놓고 갔다. ‘봄이 오고 있지만 저는 봄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팻말을 유심히 보다가 너나없이 적선을 하고 갔다.

 

팻말의 글귀를 바꾼 사람은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1896~1966)이었다.  브르통은 평소 인간의 상상력은 인간의 능력보다 우위에 있다며 현실과 상상력에 관련된 작품을 만들고 연구한 시인이다. 예술의 8할은 불행을 다룬다. 뒤집어 말하면 행복을 예찬하는 예술은 드물다. 예술은 예민한 것 들이다. 기쁨과 슬픔을 가슴에 달고 산다. 예술가는 미간에 늘 주림이 있다. 그렇다고 가슴까지 주림 지진 않았다. 불행이 와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 최창일 / 시인     ©성남일보

불행을 행복하게 만지는 이야기, 러시아 시인이며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lvan Sereevich Turgenev. 1818~1883)의 “거지”산문시가 잔잔하게 감동을 준다.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빈손으로 거지의 손을 잡는다. 그러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거지는 “이 도시에서 손을 잡아준 분은 선생님이 처음입니다.” 한 푼의 적선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만으로 뜨거워했다. 시를 읽는다고 불행이 행복으로 바뀌지 않는다. 불행한 채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래서 황동규 시인은 “시는 행복 없이 살 수 있는 훈련”인 것이라 한다.

 

시는 자기가 어떻게 절망에 도달했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시인을 만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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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로시인 2021/03/02 [21:18] 수정 | 삭제
  • 봄은 진달래 그늘 아래로 온다 그렇지 봄에 꽃을 피우는 것은 그 어느 것보다 오브제다 그리고 시가 빠지면 허전하지 시를 잘 모르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사오신 액자에서 처음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말라....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살면서 진실을 잃어버릴 때 있었고 슬플 때 화날 때도 많았다는거 오늘 시인의 손짓에 따라 푸시킨의 또 다른 시를보면서 철모른 학창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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