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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키 작은 장애인의 작은 바람

김진관/ 사단법인 곰두리봉사회 경기지부장 | 기사입력 2017/08/18 [09:26]

어느 키 작은 장애인의 작은 바람

김진관/ 사단법인 곰두리봉사회 경기지부장 | 입력 : 2017/08/18 [09:26]
▲ 김진관 지부장.     © 성남일보

[오피니언] 척추장애가 있어 150cm가 안되는 키로 어려서부터 놀림을 당하며 자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유독 영화를 좋아하고, 악기를 잘 다루고 감성적이었지만, 교육 현장이나 이 사회에서는 늘 구성원이 아닌 변두리 사람으로 취급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난 외계인인가?’

 

하지만 지금은 변두리 사람이 아닌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양쪽 모두를 잘 아는, 그래서 양쪽 세상을 이어주는 역할을 감당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원더우먼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 영화를 보는 시간 만큼은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 같고 다른 근심이나 걱정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세상을 악으로부터 살리고자 온힘을 다하는 원더우먼, 다이애나. 그리고 그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한다’ 고백하고, 세상을 구하고자 폭탄을 안고 하늘로 향한 스티브. 영화를 보는 순간 만큼은 이 세상에 모든 것을 잊게 해줍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죽어서 조금 안타깝지만 언제나 선이 악을 이깁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 세상을 살리는 일은 원더우먼이나 스티브만의 몫은 아닙니다..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아주 작은 일의 실천으로부터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밝게 만드는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으로 사람을 살리기 보다는 사람을 살수 없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이야기를 좀 나눌까 합니다.

 

‘난쟁이’, ‘난장이’, ‘봉사’...이런 단어들은 장애인을 한 수 아래로 보는, 폄하하는 단어로 저는 ‘키 작은 장애인’으로 바꾸어 불려지기를 원합니다. 저도 그 키 작은 장애인에 속하기도 합니다. 


암튼 백설공주가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쓰러져 있는 것을 살려준 사람들이 바로 ‘일곱 키 작은 장애인’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신체적으로 장애인이지만 비장애인인 백설공주를 정성껏 돌보아 생명을 살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떤이는 목수로, 어떤이는 요리사로 전문직종에 종사한 능력 있는 장애인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돌보아 주어야 할 대상, 내지는 능력이 없는 사람, 무기력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확실히 깨준 동화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일곱 키 작은 장애인과 키가 큰 백설공주가 자그마한 키 작은 장애인의 집에서 한달 동안 함께 산다면, 누가 불편함을 느낄까요? 바로 백설공주입니다.

 

정문을 왕래하려면 우리처럼 키 작은 장애인은 문을 열고 아무 거리낌 없이 지나다니지만, 키 큰 백설공주는 허리를 굽히거나, 기어서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느낌니다. 잠을 잘 때면 키 작은 장애인은 침대 하나면 가능하지만, 키 큰 백설공주는 침대 2개 이상 붙여야 누울 수 있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불편함을 느끼는 것, 바로 장애를 느끼는 것이고, 장애를 느끼는 사람이 바로 장애인입니다. 그럼 키 작은 장애인이 장애인일까요? 아니면 백설공주가 장애인일까요. 

 

이렇듯, 장애인의 개념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장애인 일수 있고, 장애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신체적인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불편함을 느끼는 쪽이 장애인이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장애는 장애인의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환경에 문제라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꾸어서 장애라는 요소를 제거해 준다면 결코 장애를 느낄 수 없고, 장애를 느끼지 않는 다면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전국에 있는 키 작은 장애인을 두루 만나보았습니다. 현재 저와 뜻을 같이 하는 5명의 키 작은 장애인을 만났는데요, 7명이 채워지면 제가 그 장애인분들과 함께 백설공주(?)를 구하러 세상에 나가 볼까 합니다.

 

밤 12시가 지나면 도시에 독(술)을 먹고, 쓰러져 있는 백설공주(?)가 많더라고요. 장애의 유무가 더 이상 능력의 정도가 되지 않는 세상. 신체적 장애가 더 이상 죄나 수치나, 부끄러움이 아니라 각자 주어진 삶대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옷을 입었다는 생각이 많이 퍼져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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