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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숙 소설가, 완역한 ‘목민심서’를 읽고

최창일 / 이미지 문화평론가 | 기사입력 2026/07/07 [19:19]

주영숙 소설가, 완역한 ‘목민심서’를 읽고

최창일 / 이미지 문화평론가 | 입력 : 2026/07/07 [19:19]

[신간 서평] 방대한 고전의 숲을 헤쳐 나와 우리말로 온전하게 길을 내는 작업은 단순히 글자를 옮기는 일을 넘어선다. 시공간의 강을 건너 옛 선현의 숨결을 고스란히 복원해야 하는 영혼의 노동이자, 시대를 향한 거룩한 헌신이기 때문이다. 

  

다산(茶山) 정약용이 18년간의 강진 유배 생활 끝에 완성한 《목민심서(牧民心書)》는 조선 후기 지방 행정의 모순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공직자의 엄격한 윤리를 정립한 72항의 방대한 대작이다. 한문으로 촘촘하게 엮인 이 거대한 정신의 유산을 일반 대중이 읽기 쉬운 현대 한글로 완역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수많은 축약본과 해설서가 서점가를 채우고 있는 현실 속에서, 주영숙 소설가가 오랜 세월을 바쳐 무려 열 권 분량의 완역 한글판 《목민심서》를 펴낸 것은 문화사적으로나 문학적으로 매우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소설가 특유의 섬세한 문체와 고전에 대한 깊은 경외심이 빚어낸 이 완역본은, 박제된 유물로 존재하던 다산의 혜안을 21세기의 한복판으로 생생하게 소환해 낸다. 이 거대한 텍스트의 숲을 건너 오늘날의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궁극의 깨달음은 과면 무엇인지, 그 깊은 울림을 칼럼의 시선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주영숙 소설가의 열 권짜리 완역본이 지니는 가장 큰 미덕은 고전의 ‘맥락적 복원’에 있다. 한문 고전, 특히 목민심서처럼 실제 행정 실무와 법률, 당대의 사회상이 촘촘하게 얽힌 책을 번역할 때는 자칫 딱딱한 직역에 머물거나 과도한 의역으로 본뜻을 흐리기 쉽다. 그러나 소설가의 문장력은 행정 지침 이면에 흐르는 다산의 고뇌와 인간, 그리고 시대에 대한 연민을 포착해 낸다. 

 

백성들의 피눈물 나는 삶을 바라보던 다산의 뜨거운 심장이 고스란히 한글 문장 속에서 고동친다. 축약본이 전할 수 없는 세세한 일화와 구체적인 법령 분석, 그리고 아전들의 교묘한 수탈 수법을 낱낱이 읽어 내려갈 때, 비로소 우리는 다산이 왜 그토록 절박하게 ‘심서(心書)’라는 이름을 붙여야 했는지 그 본질에 닿게 된다. 몸은 비록 유배지에 묶여 직접 백성을 다스릴 수 없었지만, 마음으로나마 무너져가는 나라를 붙잡고 싶었던 지식인의 눈물겨운 책임감이 주영숙의 유려한 번역을 통해 마침내 온전하게 우리에게 배달된 것이다.

 

이렇게 온전한 모습으로 마주한 《목민심서》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깨달음은 공공성(公共性)의 회복과 지도자의 도덕적 의무에 있다. 

 

다산은 책 전체를 관통하며 ‘공(公)’과 ‘렴(廉)’을 외친다. 그에게 청렴이란 단순히 개인의 결백을 증명하는 소극적인 미덕이 아니다. 청렴은 모든 선의 근원이자 목민관이 지녀야 할 본연의 의무이며, 이것이 무너지면 국가라는 시스템 자체가 붕괴한다는 것을 다산은 묵시록처럼 경고한다.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고도의 행정 시스템과 법치주의를 자랑하는 현대 사회에서도 권력을 쥔 이들의 사리사욕과 부정부패, 그리고 공적 직무를 사유화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다산이 그토록 경계했던 아전들의 은밀한 수탈과 수령의 나태함은 오늘날 형태만 바꾼 채 우리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열 권의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며 마주하는 공직자의 올바른 태도는, 작금의 공직 사회와 리더들에게 준엄한 죽비가 되어 내려친다. 자리가 주는 권력의 무게를 알지 못하고 오만하게 군림하려는 자들에게, 목민관의 자리는 오직 백성을 섬기기 위해 잠시 빌린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각인시킨다.

 

​두 번째 깨달음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집요할 정도의 ‘애민(愛民) 정신’과 제도적 감수성에 있다. 《목민심서》는 관념적인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흉년이 들었을 때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구체적인 방법(진황), 고아와 독거노인, 과부 등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을 보호하는 법(애민)을 지극히 실무적이고 통계적인 관점에서 서술한다. 

▲ 최창일 시인     ©성남일보

다산은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참된 위민(爲民)은 치밀한 행정력과 정교한 제도를 통해서만 실현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주영숙 소설가가 복원해 낸 촘촘한 번역 속에서 우리는 사회 복지의 원형을 발견한다. 이는 단순히 시혜적인 복지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국가와 관료가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능력주의와 양극화가 가속화되면서 소외된 이들이 늘어나는 현대 사회에서, 국가의 존재 이유와 행정의 목적지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다산은 확고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얻는 가장 개인적이고도 거대한 깨달음은 ‘자기 성찰의 태도’에 있다. 정약용은 이 책을 쓰며 남을 다스리기에 앞서 자신을 다스리는 ‘율기(律己)’를 가장 먼저 전제했다. 남의 허물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내면을 맑게 닦는 작업 없이는 그 어떤 개혁도, 정당성도 확보할 수 없다는 뜻이다. 

 

현대인들은 타인을 향한 비판에는 날카롭지만 정작 자신을 돌아보는 데는 지독하게 인색하다. 인터넷과 미디어를 가득 채운 분노와 비난의 홍수 속에서 《목민심서》가 전하는 내면의 단정함과 절제는 우리에게 스스로 대면할 용기를 준다. 주영숙 소설가가 열 권의 원고를 집필하며 흘렸을 땀방울과 다산이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등뼈가 휠 정도로 저술에 몰두했던 그 고독한 시간은 본질적으로 닮아 있다. 두 지식인의 치열한 노동이 겹쳐진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나의 삶을 올바르게 경영하고 있는가에 대한 준엄한 질문과 마주하는 일이다.

 

​주영숙 소설가의 거대한 완역 작업 덕분에 우리는 이제 200년 전 다산의 위대한 사상과 온전하게 대화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열 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은 읽는 이에게 큰 도전이지만, 그 도전을 기꺼이 수용할 때 얻어지는 정신의 포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목민심서》는 과거의 역사책이 아니라, 여전히 진화 중인 오늘의 거울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약자를 외면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벼려내던 다산의 정신은 주영숙의 펜 끝을 통해 우리 곁에 새롭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책이 전하는 엄숙한 깨달음을 가슴에 새기고 각자의 자리에서 ‘올바름’을 실천해 나가는 것, 그것이 시공간을 초월해 고전을 선물해 준 두 선학에게 우리가 보낼 수 있는 가장 진정성 있는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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