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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여 모세를 본 받으라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6/06/28 [10:39]

시대여 모세를 본 받으라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6/06/28 [10:39]

▲ 사진 / 픽사베이   ©

[최창일 칼럼] 성경에 등장인물은 1,794명에서 1,960명의 안팎으로 집계된다. 그중에 가장 위대한 인물이 모세라는 학자가 많다. 성경이 보여주는 가장 거대한 지도자, 모세의 인생 120년은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공식과 정반대의 궤적을 그리며 걷고 있다. 

 

​모세의 삶은 40년 단위로 급격한 굴절을 겪었다. 이집트 왕궁에서의 화려한 40년, 미디안 광야에서의 철저한 무명(無名)의 40년,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거친 사막을 헤맨 40년이 있다. 이 장구한 서사 속에서 모세가 걸어간 발자취는 오늘날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인생을 관통하는 본질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모세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점은 이집트 왕궁의 왕자에서 미디안 광야의 이름 없는 목자로 추락한 순간이다. 동족을 돕겠다는 정의감으로 나섰으나 돌아온 것은 살인자라는 낙인과 도망자 신세였다. 화려한 궁중 음악과 학문, 권력 대신 그에게 주어진 것은 끝없는 침묵의 사막과 양 떼의 울음소리뿐이었다.

 

​우리는 흔히 인생에서 실패를 겪거나, 남들보다 뒤처진 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을 보낼 때 이를 ‘버려진 시간’이라 여기곤 한다. 모세 역시 처음에는 깊은 좌절과 허무함 속에서 거친 모래바람을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훗날 돌이켜보면, 그 무익해 보이던 40년의 광야 생활은 모세를 진정한 지도자로 빚어낸 거룩한 용광로였다. 왕궁의 권력으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영웅주의를 내려놓는 시간이 있었다. 거친 대자연 앞에서 인간의 유한함을 깨닫고, 철저히 겸손해지는 법을 배운 바 있다.

 

​지리적·생존적 체득의 시간도 있었다. 그가 양을 치며 누볐던 미디안 광야는, 훗날 수백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횡단해야 할 바로 그 장소였다. 인생의 한 시절, 사방이 막힌 것 같은 광야를 지나고 있다면 기억해야 한다. 광야는 인생의 종착지가 아니라, 내면의 불순물을 걸러내고 다음 계절을 향해 뿌리를 깊이 내리는 ‘거룩한 공백’의 의미가 있다.

​80세의 노인이 된 모세 앞에 신의 부르심이 임했을 때, 모세는 철저한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며 상처 입은 자아를 드러냈다. 왕궁 시절의 당당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신은 모세에게 묻는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모세의 대답은 소박했다. "지팡이 소이다." 그 지팡이는 특별한 마법의 도구가 아니었다. 사막의 목자들이 양을 몰 때 쓰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마르고 비틀어진 나무 막대기에 불과했다. 모세의 초라한 처지를 그대로 대변하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모세가 그 지팡이를 쥐고 이집트로 돌아갈 때, 그것을 가리켜 ‘신의 지팡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보잘것없는 나무 막대기라도 신의 손에 붙들릴 때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을 내는 기적의 도구가 된다는 뜻을 품고 있다.

 

​우리는 종종 "내가 가진 것이 없어서", "배경이 약해서", "나이가 많아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없다고 자신을 한계 짓는다. 하지만 인생의 성패는 내 손에 쥐어진 지팡이의 화려함에 있지 않다. 그 초라한 지팡이마저도 온전히 맡길 수 있는 내면의 중심이 서 있느냐에 본질이 있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위대한 역사의 서막이 열리는 법이다.

 

​​모세 인생의 마지막 막은 느보산 꼭대기에서 내린다. 40년 동안 온갖 원망과 반역을 일삼던 백성들을 품고 그 모진 광야를 버텨온 목적지는 오직 하나, 약속의 땅 가나안이었다. 그러나 모세는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선언을 듣는다. 광야에서 백성들의 거듭된 불순종에 분노하여 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했던 단 한 번의 실수가 복병이 되었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보면 이보다 허무하고 억울한 결말은 없다. 평생을 바친 프로젝트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지분과 권리를 모두 박탈당한 채 퇴장하는 모양새다. 만약 모세가 세상의 기준만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절망과 분노 속에서 삶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세는 느보산에 올라 가나안 땅을 묵묵히 바라보며 신의 처분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이 찍지 못하는 마침표를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온전히 넘겨준다. 백성들을 축복하고, 미련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선택을 한 것이다.

▲ 최창일 시인     ©성남일보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위대함의 정의를 배운다. ​완성이 아닌 과정의 가치다. 진정한 성숙은 모든 영광을 내가 독차지하려는 욕망을 내려놓는 데서 온다. 내가 뿌린 씨앗의 열매를 내 대(代)에 거두지 못할지라도, 다음 세대가 그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묵묵히 디딤돌이 되어주는 삶에 더 깊은 울림이 있다. 모세의 죽음은 인간의 성취보다 더 거대한 ‘순종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모세의 삶은 화려한 영웅의 연대기가 아니다. 그것은 깨어지고, 다듬어지며, 결국에는 자신을 비워내고 거대한 흐름에 자신을 맡긴 한 인간의 치열한 성장의 기록이다.

 

​인생의 봄날 같은 왕궁에 머물고 있든, 아니면 매서운 모래바람이 부는 겨울 같은 광야를 지나고 있던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걸음이 있다. 혹은 평생을 바친 노력이 온전한 결실을 보지 못해 낙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자리에 있든 모세의 삶을 거울삼아 우리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거친 사막 한가운데서 홀로 타오르되 사그라지지 않던 떨기나무 불꽃처럼, 우리의 인생 역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섭리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타이밍에 다듬어지고 쓰임 받고 있다. 완벽하지 않았기에 더욱 위대했던 모세처럼, 우리의 흔들리는 걸음 또한 삶이라는 거룩한 지도를 완성해가는 소중한 과정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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