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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1등 국가 소말리아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6/06/07 [09:31]

시의 1등 국가 소말리아

최창일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6/06/07 [09:31]

▲ 소말리아 도시 전경   © 픽사베이

[최창일 칼럼] 총칼의 비명 속에서도 소말리아는 시의 1등 국가다. 국제 뉴스의 머리기사에서 ‘소말리아’라는 네 글자는 주로 ‘비극의 대명사’로 소비된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고질적인 내전, 무정부 상태의 혼란, 해적들의 발호, 그리고 기후 위기가 불러온 혹독한 가뭄과 빈곤이 그들이 처한 객관적 현실이다. 외견상 이 땅은 인간의 존엄과 문화적 사치가 들어설 자리가 없는, 문자 그대로의 ‘황무지’처럼 보인다. 이 거친 파탄의 표면을 한 꺼풀만 벗겨내면, 그곳에는 세계 문학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경이롭고 밀도 높은 문학적 기적이 숨 쉬고 있다. 

 

문화 인류학자들과 서구 문학계가 이 척박한 땅을 향해 경외를 담아 부르는 오랜 별칭은 바로 ‘시인의 나라(Nation of Poets)’다. 한국에서 2022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한국과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져 3백만이 넘는 관객을 모으기도 했다. ​

 

원조와 구호품 없이는 지탱하기 힘든 국가적 파국 속에서 어떻게 ‘시(詩)’가 온 국민의 삶을 지배하는 절대적 양식이 될 수 있었을까. 이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가 소말리아인들에게 단순한 예술이나 사치품이 아니라, 공기이자 물이며 생존 그 자체였다는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아야 한다.

​소말리아 시학의 가장 독특한 출발점은 그들이 오랜 시간 동안 ‘문자 없는 문화’를 영위해 왔다는 사실에 있다. 소말리아어가 로마자 표기법을 도입해 공식적인 문자 체계를 갖춘 것은 비교적 최근인 1972년의 일이다. 그전까지 수백 년 동안 그들의 언어는 오직 입에서 귀로, 말에서 말로만 이어지는 철저한 구전(Oral)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물과 풀밭을 찾아 끝없이 사막을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의 삶에서 무거운 종이책은 사치이자 짐일 뿐이다. 이 척박한 이동의 역사 속에서 소말리아인들이 발명해 낸 ‘휴대용 도서관’이 바로 시였다. 운율과 리듬이 정교하게 짜인 시구는 인간의 기억력을 극대화하는 최고의 도구였다. 그들은 부족의 위대한 역사, 조상의 계보, 관습법, 사막에서 살아남는 지혜를 모두 시의 형태로 가공하여 머릿속에 저장했다. 

 

길거리에서 만난 평범한 양치기가 수천 줄에 달하는 고전 시를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암송하는 풍경은 이 나라에서 지극히 일상적인 장면이다. 글을 읽고 쓰지 못해도 문학을 지극히 높은 수준으로 향유 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인류학적 증거인 셈이다.

 

​이들에게 시는 현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이자 언론 미디어의 역할까지 수행해 왔다. 광활한 초원에 흩어져 살던 유목민들이 서로 교차할 때, 그들은 시를 읊으며 세상의 소식을 전했다. 

전설적인 소말리아의 영웅이자 시인이었던 모하메드 압둘라 하산(Mohammed Abdullah Hassan)은 20세기 초 영국과 이탈리아의 식민 지배에 맞서 싸울 때, 군사적 동원령을 내리는 대신 전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 애국적인 시를 지어 배포했다. 그의 시를 들은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군대에 자원했던 역사는 소말리아에서 문학이 가진 선동과 결속의 힘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현대의 내전 상황 속에서도 총을 든 민병대원들이 존경받는 노시인의 나지막한 시 한 소절에 무기를 내려놓고 눈물을 흘리는 일화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들에게 시인은 단순한 예술가가 아니라 가치관의 중재자이자 신성불가침의 영적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소말리아 시가 지닌 또 다른 경이로움은 그 구조적 엄밀함에 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이 일상적으로 누린다고 해서 그 형태가 결코 느슨하거나 조잡하지 않다. 오히려 소말리아의 전통 고전 시학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규칙을 요구한다.

 

​대표적인 고전 시 형식인 ‘가바이(Gabay)’의 경우, 한 편의 시가 지속되는 동안 수십, 수백 행에 이르는 모든 구절의 중심 단어가 반드시 같은 자음으로 시작해야 하는 ‘두운(Alliteration)’의 규칙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 여기에 소리의 길고 짧음을 정밀하게 맞추는 음악적 장단(음보)까지 완벽해야 비로소 하나의 시로 인정받는다. 

▲ 최창일 시인     ©성남일보

이 엄격한 문학적 틀을 사막의 유목민들이 즉흥적인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사한다는 사실은, 소말리아어 자체가 얼마나 시적인 구조를 타고났으며 그들의 언어적 감각이 얼마나 고도로 단련되어 있는지를 대변한다. 그들은 언어의 규칙을 가지고 놀 줄 아는 태생적인 ‘언어의 귀족들’이다.

가장 비극적인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소말리아의 시학은, 물질문명의 과잉 속에서 오히려 정신적 빈곤과 언어의 상실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에게 언어란 무엇이며, 삶을 지탱하는 진정한 유산은 어디에 있는가. 총칼의 비명 속에서도 기어이 흐르고야 마는 그들의 노래 속에서, 우리는 문학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도 위대한 생명력을 목격하게 된다. 소말리아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지상에서 가장 뜨거운 ‘시의 강국’으로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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