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칼럼] 시인은 무엇을 보는가. 꽃을 보면 꽃만 보지 않고, 별을 보면 별 너머를 본다. 그렇다면 음식을 볼 때는 어떠한가. 진정한 시인은 밥 한 공기에서 어머니의 허리를 읽고, 김치 한 보시기에서 한 민족의 겨울을 읽는다.
시(詩)와 음식은 인류가 가진 두 개의 오래된 언어다. 하나는 입으로 먹고, 하나는 마음으로 먹는다. 그러나 어떤 시인들은 그 경계를 허물었다. 음식을 쓸 때 그들은 단순히 맛을 묘사한 것이 아니었다. 기억을, 상처를, 공동체를, 저항을 밥상 위에 펼쳐놓았다.
한국 현대 시에서 음식을 가장 풍요롭게, 가장 깊이 노래한 시인을 꼽으라면 단연 백석(白石, 1912~1996)이다. 그의 시집에는 냉면, 국수, 가자미, 명태 창난젓, 찰밥 등 음식이 홍수처럼 흘러넘친다. 그러나 백석에게 음식은 결코 먹거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고향의 좌표이자, 분단으로 영영 닿을 수 없게 된 유년의 지도였다.
백석의 시에서는 음식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가 토속 시어로 노래한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슬픔은 음식이란 장치를 통해 공동체 집단의 DNA에 대한 그리움으로 승화한다. 그의 시 「북관」에서는 "명태 창난젓에 고추 무거리에 막 칼질한 무이를 비벼 익힌 것"을 먹으며 시인은 "여진의 살 내음 새"를 맡고, "신라 백성의 향수도 맛본다"라고 했다. 젓갈 한 종지에서 수천 년 역사의 냄새를 맡는 것, 이것이 백석의 시적 감각이었다.
백석에게 냉면 한 사발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자란 그에게 국수는 유년 그 자체였다. 속이 클클할 때, 화가 치밀어 오를 때 국수를 먹는다는 것은 평안도 사람만이 이해하는 심리라고 했다. 음식이 그 고장 사람의 정서 구조와 얼마나 깊이 결합하여 있는가를 보여주는 증언이다. 시인은 음식을 먹은 것이 아니라, 음식으로 자신의 뿌리를 확인했다.
음식을 시로 쓴 역사는 훨씬 오래되었다. 조선의 시인 김려, 박제가, 서거정, 정약용, 유득공, 윤선도, 이규보, 이색 등 100여 명이 남긴 300여 수의 시와 산문 속에는 음식에 대한 맛있는 인생 예찬이 흘러넘친다. 이들에게 음식을 읊는 일은 가볍지 않았다. 음식은 사계절의 순환이었고, 자연의 섭리였으며, 인간 존재의 겸손한 고백이었다.
박은은 눈 내리는 긴 겨울밤 아내가 장독에서 꺼내 온 찬 김치 한 보시기와 술 한 잔에 감동하여 밤이 늦도록 정담을 나누었고, 박제가는 먼저 간 누님을 그리워하며 해마다 생일날이면 빚어 주던 만두를 떠올리기도 했다. 김치 한 보시기에 담긴 부부의 겨울, 만두 한 그릇에 담긴 누이에 대한 애도. 조선의 선비들은 음식을 통해 사람 사이의 온기를 시로 증언했다.
시인 김려는 곰취를 두고 이렇게 노래했다. "붉은 고추장은 윤기가 잘잘, 햅쌀 하얀 밥은 따끈따끈, 거위 알처럼 여러 겹 싸서 입을 벌리고 잘근잘근 씹으면, 맑은 향이 폐와 위를 적시며 온몸에 난초 창포 향이 스미는 듯"이라 했다. 채소 하나를 두고 이토록 상세하고 생생한 감각의 묘사를 쏟아낸 것은, 그것이 단순히 식재료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하나의 성소(聖所)였기 때문이다. 음식은 먹는 것이 아니라, 체험되는 것이었다.
김치는 한국 문학 안에서 특별한 위상을 갖는다. 그것은 단순히 밥반찬이 아니라, 인내와 시간의 상징이었다. 우리 역사 속에서 김치의 재료와 형태, 즐기는 방법 등은 꾸준히 변화했지만, 변함없이 김치를 곁에 두며 사랑해왔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이 변하지 않는 사랑의 근저에는 무엇이 있는가. 시인들은 그 답을 발효라는 시간의 철학에서 찾았다.
생각해보면 김치는 묘한 존재다. 붉지만 불타지 않는다. 맵지만 상하지 않는다. 땅속 깊이 묻혀 아무도 보지 않는 사이에 스스로 익어간다. 이 절임과 숙성의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적 서사다. 소금에 절여지는 것, 그 압도적인 힘 앞에 제 수분을 내어주는 것, 그리고 그 빈자리에 양념이 스미는 것. 시인들은 거기서 인간의 조건을 보았다. 눌리고 절여지고서야 비로소 진짜 맛이 나는 것들. 김치는 그런 존재들의 초상이었다.
'없는 사람은 김치를 많이 먹게 된다'는 말은 서민들에게 김치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다른 먹거리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철, 김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매우 소중하고도 기본적인 반찬이었다.
이 민중의 음식을 시로 쓸 때, 시인들은 화려한 수사(修辭)를 내려놓아야 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음식을 노래하기 위해서는 시어 역시 낮아져야 했다. 그것이 음식 시학(詩學)이 지닌 윤리적 요청이었다.
<저작권자 ⓒ 성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