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칼럼] 새해다. 조선 시대는 선비들에게 세배(歲拜)의 시간이었다. 우리의 역사에서 조선 시대는 선학을 찾아 세배를 올리는 것은 문화적 요소로, 유교 이념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선비는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다. 특히 유교 이념을 구현하는 인격체 또는 신분계층을 가리키는 용어다. 선비 세계도 학문의 계보, 인맥(학파 學派)이 있다. 요즘으로 치면 라인(line)이다. 그 라인의 존경하는 선학을 찾아 새해 세배를 드리는 것은 선비의 자부심이다. 조선 시대의 세배는 조상에 올리는 차례(茶禮)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
선비들이 세배를 가면 세화(歲畫), 그림을 선물로 받았다. 세화는 새해를 축복하고 복을 담은 그림이다. 세화는 중국에서 유래한 풍습이다. 조선 초기 우리나라에 정착되어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궁중에서 행하던 ’문배 풍속‘이었다. 조선 시대에 임금이 신하에게 주는 세화로 확대, 이어졌다. 이후 점차 변화를 거듭하여 세화에서 생활용품의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으로 발전하였다.
세화에는 벽사(僻邪)의 의미를 담아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그림을 선물하였다. 일종의 부적과 같은 그림이다. 송축(頌祝)이라는 의미로 복을 기원하는 그림을 선물하기도 했다. 나아가서 선비가 잘 치는 사군자를 선물하기도 했다. 선비들이 치는 그림은 해, 학, 소나무, 사슴을 주로 그렸다. 그림의 화재로는 청정(淸正)이라고 썼다. 청정의 뜻은 아주 깨끗한 마음으로 울린다는 의미를 담았다.
문인들의 세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시대 이덕무(李德懋, 1741~1793) 문인이 있다. 이덕무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자 문인이다. 이덕무는 설날이 되면 500여 명에게 세배를 받았다, 이는 당시로써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의 이러한 기록은 그가 남긴 세시잡영(歲時雜詠)에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덕무가 세배를 받은 이유는 그의 뛰어난 학식과 문장력에 있다.
그와 같은 풍습은 요즘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김동리 소설가는 후학이 세배를 오면 덕담의 휘호를 주기도 했다. 후학들은 선학의 휘호나 그림을 받는 것을 큰 보배처럼 여기기도 했다. 꼭 그림이나 휘호가 아니라도 존경하는 선비의 친필로 만들어진 시를 받기도 했다. 정치인 중에는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예 글씨를 선물하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졌다.
박이도 시인은 새해와 세배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상을 가지고 있다. 박이도 시인은 새해를 맞는 문인에게 새해를 맞는 마음가짐을 전하고 있다. “새해엔 모두 바꾸어 가진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 묵은 수첩을 버려야 한다.” 이는 새해를 새로운 시작으로 여기고, 과거의 것들을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가짐을 이른다. 시인은 세배에 대하여 말한다. “새해 첫 시간에 저를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의 큰 절로 세배부터 올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이는 세배의 예의와 정신을 말한다. 박이도 시인은 새해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새해 아침이 밝았다. 내가 꿈꾸던 내일의 희망…. 매일매일 새 생명을 주시고 새날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경배하세”라는 시인의 새해와 세배의 전통적 의미를 깊이 되새기고 세배의 전통을 이야기한다. 박이도 시인은 새해면 문인들에 육필 편지와 엽서를 올린다. 육필의 글을 받는 문인들은 답신을 육필의 편지를 보내온다. 박이도 시인은 당대의 문인들에게 받은 육필을 한 권의 책으로 발표했다. 김광균, 서정주, 조병화, 김현승, 등의 시인과 황순원, 이청준, 김승옥 등 소설가의 육필도 있다. 시인은 그렇게 60년간 새해의 편지를 주고받아 남산 문학의 집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근대의 작가 중에도 조지훈이나 황순원 같은 작가에게는 세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조지훈과 같은 시인은 학생들이 시위에 나가면 시대의 아픔을 같이해주는 실천의 학자였다는 것이다.
황금찬(1918~2017) 시인은 한국문단의 원로이자 장수를 한 시인이다. 2016년 1월, 황 시인은 99세 생일을 맞아 ’백수연(白壽宴)‘ 축하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 행사는 99명의 문인이 황금찬 시인께 새해 세배를 올리는 특별한 순서였다. ‘시가 흐르는 서울’이라는 단체가 주최한 이 행사는 황금찬 시인의 백수를 축하하고 그의 문학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99명의 유명 인사들의 축하 인사와 시인들의 시가 담긴 시집도 발간하였다. 황금찬 시인의 세배 행사는 우리 시대, 선비의 마지막 거룩한 행사로 기록될 것이다. <저작권자 ⓒ 성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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