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칼럼] 국민 시인, 소월의 스승이 김억 시인이다. 김억은 1896년 태어났으나 사망 연도는 미상으로 나오기도 하나 어느 자료에는 1948년이라는 자료도 나온다. 김억의 사망 연도에 과잉 활자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1800년대의 시절은 유명 시인의 사망 날도 선명하지 않고 어수선함을 알 수 있다. 김억의 호는 안서(岸曙)다. 시인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1921년)가 있다.
시집에는 구르몽, 사맹, 예이츠, 보들레르 등의 상징파 시 77편이 수록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번역 시집으로 평가된다. 지금도 <오뇌의 무도>의 시집은 해설과 함께 여러 출판사에서 나오는 것은 중요한 자료시집으로 평가된다.
독특하게도 보수적인 김억 시인이 <꽃을 잡고> 감성적인 가요의 가사를 만들기도 했다.
‘꽃을 잡고 울었네/그대 꽃잎 같은 눈물을 흘리며/ 꽃을 잡고 울었네’ 노래는 선우 일선(1919~1990) 음악가가 부른 노래다. 꽃과 눈물을 통해 깊은 감정과 서정성을 표현하고 있다.
당시만 하여도 우리 시단의 보수적, 선비정신 분위기가 뚜렷했다. 보수라는 것은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새로운 부심(浮心)을 거북해하는 면도 있다. 하나의 사례로 김억과 같은 보수의 시인이 대중가요 작시를 하는 것에 선비정신이 가득한 시단에서는 거부감을 보였다. 젊은 시인들이 김억의 집을 찾았다. 혈기의 시인들은 김억을 들어 강하게 이견을 표현했다. “ 선생님께서 어떻게 가벼운 대중가요를 작시할 수가 있습니까?” 김억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젊은 시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여보게 저기 보이는 쌀통을 열어보게” “아이들과 집사람이 배를 굶고 있어 쌀 두 말을 받고 노랫말을 주었네” 젊은 시인들은 김억의 말을 듣고 하나둘 일어섰다.
우리의 것을 지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폭이 좁은 단순한 시선으로 보는 것은 꼭 지켜야 할 보수마저 잃게 된다. 한국의 보수는 유림(儒林)과 같은 곳에서 전통을 지켜왔다. 그 유림마저도 시대에 어울려 유튜브로 제사를 중계하기도 한다. 변하는 것의 보수 일면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는 어느 때부터인가 보수와 진보를 이념(理念)으로 보기도 한다.
진보(進步)는 걸음을 나아간다는 뜻이다. 보수(保守)는 보호하고 지킨다는 뜻이다. 진보는 아직 차지하지 못했으나 더 미래로 나아가고 싶어서 한다. 보수는 이미 차지했으나 그곳을 지켜야 한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다. 가령 축구 경기를 하고 있다면 수비 중심의 경기를 펼칠 것이다. 이긴 경기를 지켜야 한다. 반면, 현재 경기를 지고 있다면 공격 중심의 경기를 펼쳐야 한다. 진보로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보수는 과거의 것에 보다 무게 중심을 둔다.
진보는 미래에 보다 중심을 둔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상반된 생각이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의 본질은 현실에서 더 난해하게 대립한다. 따지고 보면 보수와 진보는 우리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너무 보수화되면 대원군이 펼친 쇄국 정치가 된다. 그렇다고 우리의 전통을 무너지게 하면 우리의 문화는 말살되고 만다. 인사동의 전통이 사라지는 것은 우리의 보수와 옛것이 사라진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생업이 있다. 마치 김억이 쌀 두 말을 위하여 보수를 슬쩍 벗어남과 같다.
방탄 소년단의 앞에는 남인수나 현인이 있다. 이들의 보수적인 전통의 노래가 방탄 소년단의 진보적 노래가 세계 속으로 걸어간다. 담배도 그렇다. 보수를 지향한다면 오늘의 세련된 담배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담배를 말아서 피우는 봉초 담배 정도일 것이다.
보수와 진보는 늘 같이 걸어가는 친구다. 이것을 이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갈라치기 정치문화다. 어느 자료에는 진보와 보수를 정치적인 해석을 하기도 한다. 최근 시를 만드는 것에도 보수와 진보가 있다는 말을 한다. 진보는 선학의 시집을 많이 보는 것을 예로 든다. 누구도 못하는 사유의 시간을 말한다. 한편에서는 왜 시에서 보수와 진보가 나오느냐고 의견도 있다. 다분히 이념의 단어로 해석하는 오해다. 밤이 있어 낮이 있듯, 보수가 있어서 진보도 있다. <저작권자 ⓒ 성남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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