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대전] 남한산성 관어정 옆에는 병자호란의 영웅 서흔남의 묘비가 서 있다. 서흔남의 묘비는 광주시 향토문화유산 기념물 제6호로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124-1에 위치하고 있다. - 개요 서흔남(徐欣男, ?~1667)은 병자호란 당시 광주에 살던 수어청 병사의 사노(私奴)로 전쟁 중 공을 세워 노비 신분에서 면천된 인물이다.
- 활동 서흔남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들어온 후 청군에 포위되자 외부와 연락을 위해 승려 두청(斗淸)과 함께 성 밖의 도원수 김자점(金自點), 황해병사 이석달(李碩達), 전라감사 이시방(李時昉)의 장계를 성안으로 가지고 돌아 오는데 정세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준 인물이다.
서흔남은 적진도 정확하게 정탐하였는데, 택당 이식(李植)도 그를 통해 가족들이 피난했던 지역이 청군에게 함락됐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 공적 서흔남은 병자호란 당시 생사를 걸고 적진을 오간 공로를 인정 받아 면천 되고 관직도 제수 받았다. 숙종과 정조도 그의 공을 기려 후손을 등용하는 은혜를 베풀었다. 그의 행적은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중정남한지’를 비롯한 각종 문집에 실려 있다. - 묘비 현황 서흔남의 비석은 2기가 있는데, 하나는 1667년(현종 8) 3월 13일에 건립한 것으로 앞면에 ‘嘉義大夫同知中樞府事徐公之墓’라는 내용으로 비석의 주인이 누구인지 적고, 뒷면에는‘康熙六年丁未三月十三日立’ 등 건립 시기를 적었다. 다른 하나는 절단돼 상단이 없는 상태로, 앞면에‘…大夫同知中樞府事 … 徐欣男之墓 …韓氏부左’라고 묘주(墓主)를 적고, 뒷면에는‘… 五年八月十五日’이라고 건립시기를 적었으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는 상태이다.
이 비들은 남한산성 검복리 병풍산에 있던 것을 광주시청과 광주문화원에서 발견해 1998년 현 위치에 안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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