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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가, 남재희 이야기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4/10/11 [19:46]

장서가, 남재희 이야기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4/10/11 [19:46]

▲ 사진 / 픽사베이  

[최창일 칼럼]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별에 가셨다(9월 15일). 남 장관이라는 호칭보다는 작가라는 호칭을 붙여주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장관은 학인과는 인연이 크지 않다. 

 

청계천 헌책 서점가에서 마주치고 눈인사가 전부다. 인연인지 시간이 흘러서 또다시 헌책방에서 만난 적이 있다. 몇 마디 주고받았다. 아끼는 책을 물었다. 장서가는 많은 장서 중에 아끼는 책이 있다. 학인은 권일송 시인의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 시집을 늘 애지중지 한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이신 권일송 시인이 교단 시절에 처녀 시집으로 펴냈다. 고급 장정 천으로 표지가 됐다. 헌책방에서는 2십만 원, 3십만 원에도 구하기 힘든 시집이다. 

 

남재희 작가는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를 아끼는 책이라 했다. 3만 권의 장서를, 가지고 있다 한다.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키신저가 발로 쓰고 키신저의 숨 쉬는 지식이 전해지기 때문이라 한다. 

 

남 작가는 다난한 시절의 기자 생활을 했다. 한국일보, 조선일보, 서울신문에서 기자, 보도국장을 지내고 국회의원도 하였다. 김영삼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의 이력이다. 남 작가의 국회의원 시대는 군사정권 시절이다. 상식이 통하기보다는 강압과 획일이 통하던 시간이다. 기자의 분방한 생각, 작가 정신의 자유로움인 남 작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시간이다. 

 

남재희 작가라 하는 것은 그가 문인들의 강물인 <강서문학>에 연재하고 책을 만들었다. 남재희 면면은 <강서문학> 이외의 대중 간행물에 연재할 수 있다. <강서문학>을 눈 아래로 내려보는 것은 아니지만 강서문학지는 지역의 문인들이 동인처럼 운영되는 간행물이다. 연재내용은 2024년 1월에 단행본 <내가 뭣을 안다>라는 표제로 펴냈다. 정계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다. 좀처럼 알기 어려운 비사도 있다. 나림(那林) 이병주와의 관련 이야기가 재미있다. 

 

나림 이병주는 소설<지리산>의 작가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작품을 쓰면서 보조 직원을 5명씩이나 채용한 소설가다. 보조작가는 작품을 쓰는데 자료를 수집한다. 작가가 쓴 소설의 내용을 검증하는 역할도 한다. 나림 이후 만화작가나 소설작가들이 나림과 같은 글쓰기의 체계를 갖추는 계기가 됐다. 나림을 일러 ‘불세출의 작가’라 호명한다. 그가 남긴 저서는 80여 권이다. 실록 소설과 춘추필법을 구사하는 수필들을 정독해 보면 나림의 작가 세계에 큰 호감이 간다. 나림의 책상 앞에 “나폴레옹 앞에는 알프스가 있고 내 앞에는 발자크가 있다”라고 써 붙였다. 소설가라면 나림의 작가적 기량에 있어서 의욕의 작가이며 천생의 작가라 말한다.

 

이병주 연구자였던 고 김윤식 선생은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이렇게 말한다. 장편 소설 <비창>을 예로 든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사고와 행위가 너무 질정(質定)이 없지 않으냐” 질문했다. 나림은 “나는 육십이 넘은 지금도 세상살이 갈팡질팡하는데, 이제 삼십을 넘은 술집 마담의 형편에 질정 없이 행동 하는 것이, 이상할 바 있겠느냐”라는 우문현답의 대답에 김윤식 선생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하는 작가다. 지금의 육칠 십 대는 나림의 작품을 읽은 세대다. 해박한 작가의 논설법은 소설 속으로 빨려들게 하는 작가다. 남 작가는 같은 세대의 나림과 술잔을 나눈 사이다. 살아 있는 이야기를 <강서문학>에 연재한 사실이 흥미롭다. 

 

이외도 문단의 작가들과 교류의 이야기가 흥미 있게 다루고 있다. 고인이 되기 전, 어느 방송사에서 인터뷰했다. “공부하면서 의문의 작가는 하이데거다” “철학의 아버지라 일컫는 그가 왜 나치를 찬양했는지 의문”이라 했다. 다른 한 가지는 “한국에서 철학사에 기둥을 세운 박종홍 교수가 박정희 정권이 유신통치를 하는데 그 기초를 만든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했다. 

남 작가는 특별한 삶의 철학이 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상식의 철학을 가지고 산다. “상식은 실수를 덜 한다.” 당면한 문제에 성실하게 대하고 산다“ 

▲ 최창일 시인   © 성남일보

남 작가의 말을 들으면서 “시는 그때그때 중요한 태도”라는 최은하 시인이 떠올랐다. 남 작가는 3만여 장서를 고인이 되기 전 모 신문사와 학교에 기증했다. 세련된 상식의 작가를 떠나 보낸 것은 우리의 손실이다. 그는 청마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를 마지막 말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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