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칼럼] ’남자의 물건‘은 김정운 교수 저서 제목이다. 조금은 딱딱하게 읽히는 인문학서이다. 책의 제목을 보고 상상하는 생각으로 책의 구매는 낭패다. 김 교수가 일본으로 유학 중이다. 친구들이 간혹 일본으로 찾아온다. 오늘은 물 좋은 계곡으로 나가 배나 타자했다. 친구들은 좋아하며 따라나섰다. 계곡에 도착하여 배를 타고 놀았다. 친구들은 실망하는 눈빛이었다는 언어 유희의 질곡을 보이는 대목이다. 작가는 설명도 없이 여운을 남기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국민 배우 안성기 부부가 교토에 놀러 왔다. 며칠을 함께 지냈다. 안성기 부인은 현역 배우라 하여도 손색이 없는 미모라는 소개다. ‘안성기’라는 이름에 관한 이야기도 한다. 원래 안성기의 아들 이름에는 ‘환’이 돌림자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큰아들이 태어났을 때 이름을 ‘안고환’이라고 지어야 하는 거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한다. 안성기와 안고환 정말 어울리는 부자의 이름이 아니냐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김 교수에게 물었다는 대목이 있다. 다행스럽게 최인호 소설가가 ‘다빈‘으로 지어 주었다 한다.
김 교수의 말은 아니지만 이미 고인이 되신 이성교 시인이 있다. 황금찬 시인은 시인의 이름이 그따위가 있냐며 당장 바꾸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순박하고 낭만의 시대는 이름에 대하여 김정운 교수와 같이 남자의 물건이라는 유희성을 사용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다. 세상이 표피적이고 언어의 사용을 그저 유희성으로 사용하다 보니 부모가 남겨준 이름이 놀림이 되는 세상이 되었나 싶다.
고종석 작가가 쓴 한국어 산책 <말들의 풍경>이 있다. 말들의 풍경은 우리 문단에 혁혁한 평론의 품격을 높인 김현(1942~1990)의 유고 평론집 표제이기도 하다. 김현 평론가는 말들의 풍경을 탐색하는 데 생애를 바친 분이다. 말들의 풍경을 탐색하는 그의 말들은 그 자체로 한국 문학사의 빼어나게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이루고 있다.
김현 평론가가 1962년부터 1990년까지 스물여덟 해다. 또 다른 김현의 <행복한 책 읽기>가 있다. 김현 일기 1986~1989이라는 부제가 빨간 활자로 되어 있다. 김현 평론가는 기형도의 시 해설을 썼다. 혹자는 기형도 시인의 부활은 김현 평론가의 해설이라 하기도 한다. 김현 평론가의 어느 날의 일기 한 토막. “어느 날 저녁, 지친 눈으로 들여다본 석간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거짓말처럼, 아니 환각처럼 읽은 일단 기사는, ‘제망매가’의 슬픈 어조와 다른 냉랭한 어조로, 한 시인의 죽음을 알게 해 주었다. 이럴 수가 있나, 아니, 이건 거짓말이거나 환각이라는 게 내 첫 반응이었다. 나는 그 시인의 개인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 우리의 관계는 언제나 공적이었지만, 나는 공적으로 만나는 사람 좋은 그의 내부에 공격적인 허무감, 허무적 공격성이 숨겨져 있음을 그의 시를 통해 예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죽었다. 죽음은 늙음이나 아픔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겪게 되는 한 현상이다.”라는 긴 글이다.
이 글들은 기형도 <잎 속의 검은 잎>의 해설에도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기 시인이 기자였기에 이런저런 사연으로 김현 평론가와는 이름 정도는 또는 공적으로 기억하거나 시로 인식을 하고 있을 수 있다.
김현 시인은 시인의 죽은 사람의 육체는 부재하는 현존이라 한다. 다시 현존은 부재라 한다. 김현 평론가의 기형도에 대한 애석은 그가 누구인지 기억에서 멀어지는 것이 무섭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바람직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김 현 평론가는 기형도 시인의 죽음을 놓지 못하고 시의 해설을 부둥켜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평론이기에 별의 기형도는 만인에게 시의 향기를 오늘도 전하고 있을 것이다. 해설의 제목으로 ‘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 ‘한 젊은 시인을 위한 진혼가’라는 작은 글씨의 부재도 달았다. 그러면서 시집의 107페이지에는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라는 말도 강조하고 있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김현 평론가도 별에 갔다. 그는 별에 가면서 기형도 시인의 시의 빈방을 열어주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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