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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想과 인간]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최창일 / 이미지 문화학자 | 기사입력 2024/05/23 [08:13]

[詩想과 인간]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최창일 / 이미지 문화학자 | 입력 : 2024/05/23 [08:13]

▲ 사진 / 최창일


詩想과 인간27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시인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옹졸하게 욕을 하고//한번 정정당당하게/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가로놓여 있다/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 야전 병원에 있을 때/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너스들 옆에서//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가 절정 위에는 서 있지/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이발쟁이에게/땅 주인에게는 못 하고 이발쟁이에게/구청 직원에게는 못 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 하고/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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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도 5.16이 일어났다. 김수영 시인은 조지훈, 서정주 시인에게 전화한다. 연락이 두절이다. 시인과 다른 작가도 마찬가지로 군사 권력에 끌려갔다. 시인은 자신의 처지를 한없이 부끄러워한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 분개하는가”이 말에는 ’큰일‘에는 분개하지 못하는 시인의 소심함에 대한 반성을 담긴다. 자신이 분개하지 못하는 것은 가족, 삶의 생명, 사회적 지위를 잃을까 두려움의 표현이다. 

 

권일송 시인은 그래도 김수영 시인이기에 ’소 시민성‘ 분개를 시편에 담았다며 용기를 부러워한다. 2연에는 화자가 하지 못했던 ’큰일’이 열거된다.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하여 정정당당하게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베트남 전쟁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는 것. 

 

시가 발표된 것은 1965년, 박정희 군사정권이 언론을 탄압하고 현실 비판이 쭈그러진 상황이다. 시인은 자신의 옹졸하고 소심한 성격이 오래전부터 몸에 밴 것을 고백한다. 3연에서 경찰이, 군인이 되지 못하고 간호사가 거즈를 개키는 모습을 그리며 소심함으로 시의 촛불을 켠다.

 

김수영 시인은 한일 협정 반대의 소리를 높였다. 반대의 의견을 시작한 시인이다. 검찰의 시대와 다르지 않다. 똑같다. 나는 거즈를 개키듯 키 작은 시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부끄러운 시인이다. 이미 별에 계시지만 대한민국 시인들에 가장 존중받는 김수영 시인에 5.16 언저리 시간에 안부를 전한다. 최창일 이미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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