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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은 고려의 화살집에서 시작

배낭의 역사는 화살을 넣었던 ‘화살집’으로부터, 고구려 장수들이 사용하며 진화… 오늘의 배낭으로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기사입력 2024/05/12 [22:06]

배낭은 고려의 화살집에서 시작

배낭의 역사는 화살을 넣었던 ‘화살집’으로부터, 고구려 장수들이 사용하며 진화… 오늘의 배낭으로

최창일 / 시인· 이미지평론가 | 입력 : 2024/05/12 [22:06]

[최창일 칼럼] 배낭은 화살집에서 진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퀴로 굴리는 가방과 등에 메는 배낭의 역사는 분리하여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 사진 / 픽사베이     ©

유럽에서 백이 모양을 갖추어 시작된 시기는 14세기, ’향낭’에서 시작된다. 14세기에 소매치기와 도둑을 경계하여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나르는데 끈으로 묶은 가방을 허리에 부착하는 것이 그 시작으로 본다. 그런 가운데 유럽에서 흑사병이 퍼지기 시작하자, 몸에 습한 물기가 닿으면 병균이 묻어 사망에 이를 것이라 진단, 예방한다. 불쾌한 체취와 위생의 예방 대안으로 등으로 옮겨가는 향낭이 탄생하게 됐다.

 

이렇게 조금씩 진화를 거듭한 배낭은 19세기에 들어 여성들이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주머니가 밖으로 나온다. 여성의 주머니가 점점 커지며 배낭 형태로 진화된다. 이렇게 조금씩 진화된 ‘백’은 실용성으로 일상의 백으로 다양화되기 시작했다. 

 

요즘 흔히 메는 가방은 미국식으로 백으로 부른다. 종류는 배낭, 더플백, 크로스백, 메신저 백, 슬링 백, 핸드백, 클러치백으로 분류하는 것이 보편이다.

 

백 팩은 우리말로 풀이하면 뒤에 메는 짐, 등짐, 봇짐으로 칭한다. 우선 우리말의 등짐에 관한 공식적이고 체계적인 자료는 찾기가 힘들다. 미국과 유럽의 백 팩에 관한 자료만 소게 된다. 

 

백 팩을 사용한 사람들을 뉴욕주민(뉴요커)을 들고 있다. 이들의 유행이 정장, 스니커즈를 적당한 크기의 배낭에 넣어서 사용하였다. 뉴욕에 주차료가 비싸기에 자가용을 가지고 다니기에는 부담이 컸다. 뉴욕주민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정장과 구두를 넣는 배낭을 사용하였다. 점차 배낭은 대중화되면서 하이킹, 등산 등 스포츠와 밀접하게 일상화되어 갔다. 휴대해야 할 짐이 많을수록 일반 가방보다는 배낭이 편리하게 사용됐다. 작업용 공구, 컴퓨터 등 무거운 도구들을 수납하여 운반하는데 편리성을 가져왔다.

 

여행이 일반화되고, 직장인, 학생들이 컴퓨터휴대의 보편화에 배낭은 일상화의 몸과 같다. 배낭을 메면 양손을 사용할 수 있다. 

 

동양에서 배낭의 역사는 화살을 넣었던 ‘화살집’으로부터다. 고구려 222년(신상 왕 26)부터다. 장수들은 다양한 형태의 화살집을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화살집이 스님의 바랑, 백 팩으로 진화를 거듭된다. 이성계가 사용한 화살집은 여러 디자인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보아도 화살집이 바랑으로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60, 70년대 학생들이 보자기를 등에 메고 다니는 일을 기억한다. 조선 시대는 선비가 나들이 떠날 때 봇짐과 같이 무명천으로 진화 이전의 배낭을 사용했던 자료가 있다. 아울러 등에 지는 지게와 같이 메는 데는 농사에 필요한 짐을 운반하는 데 배낭처럼 이용하였다. 그러한 도구들은 스님의 회색 바랑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배낭의 역사는 뉴욕주민에 사용 이전의 동양권에서 널리 사용되었을 확인할 수 있다.

▲ 최창일 시인     ©성남일보

우리의 디자인 역사가 서양이나 유럽에 비교하여 뒤늦게 꽃을 피웠기에 같은 필수품을 만들어도 마치 미국이나 유럽의 전유물로 소개되었음이 아쉽다. 유럽이 양복을 입을 때 우리는 우리의 옷인 한복을 입었다. 디자인은 달라도 옷이라는 고유 패션을 나타낸다. 배낭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백 팩이라 하지만 동양권의 스님은 바랑, 선비들은 봇짐이라는 말로 통용되었다. 공통어로 자리 잡은 미국식의 백 팩에 대한 이견을 달리하는 것이 아니다. 유행된 상품은 세계인의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에게도 뉴욕주민이 아닌 배낭으로 19세기에 들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뉴욕주민이 그러하듯 우리의 할머니도 속옷에 주머니를 달아 용돈을 넣어서 사용했다. 나이들은 어르신들은 할머니의 안주머니에서 용돈을 받아 소풍에서의 즐거운 추억을 기억한다. 그 주머니는 진화를 거듭하며 밖으로 나온 것이다.

 

서양에서 합리주의 문명이 만들어져 사용될 때 동양, 우리 문명도, 진화하고 있었다. 유럽의 문화가 떠다닐 때 동양과 한국의 문화도 유유히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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