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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일에 태극기 집마다 게양되길 기대한다

김기권 / 전 남양주오남중학교장 | 기사입력 2024/03/01 [09:15]

국경일에 태극기 집마다 게양되길 기대한다

김기권 / 전 남양주오남중학교장 | 입력 : 2024/03/01 [09:15]

[김기권 칼럼] 191931일은 한일병합에 항거해 조약 무효와 독립을 선언하며 비폭력 시위운동으로 고종의 장례일에 맞춰 전국적으로 일어난 독립운동이다.

 

이 운동을 계기로 군사, 경찰 강압 정치에서 민족 분열책인 문화 통치 유화정책으로 전환했다.

 

전국적으로 3.1운동 이후 3개월간 2023,089명이 시위에 참여하고 시위횟수는 1,542회 사망자 7,509, 부상자 15,961명 피체포자 46,948, 헐리고 불탄 민가 715호 교회 47개소 학교 2개소 등이다.

 

성남의 3.1운동은 대왕, 낙생, 돌마, 중부 지역의 남한산성 등지에서 일어났다. 326일 서울 송파 일대에서 성남지역은 2728293일간 집중적으로 폭발했다.

 

성남은 남한산성이 있어 한말 의병 전쟁 격전지로 항일 의식이 어느 지역보다 높았으나 지리적으로 한강이 가로막고 산들이 많아 교통이 불편해 정보전달이 늦어 3.1 독립운동도 늦게 시작되었다. 

▲ 김기권 전 남양주 오남중학교 교장     ©성남일보

 

이 지역 독립운동 특색은 학생층이나 종교단체가 아닌 순수 농민들의 자발적 운동으로 지도자는 낙생면 면장 남태희, 돌마면 한백봉. 한순회, 대왕면 이시종 이재순 등 애국계몽 청년층이 주도한 것으로 재판문서에 기록되었다.

 

단대리, 탄리, 수진리 주민 300여 명이 남한산성에서 만세시위를 벌였으나 일경의 강제 진압으로 좌절됐다. 이는 돌마면 율리 한백봉과 한순회가 주동이 되어 시위를 벌였다. 한백봉은 일경에 체포 징역 98개월의 구형을 받았다.

 

이 지역에서 시위가 계속되고 체포된 3,000여 명 중 유일하게 중형을 받을 만큼 그의 업적은 대단했다. 그러나 상고에 상고를 거듭하여 복심원에서 36개월에 복역 중 영친왕의 특사로 풀려났다.

 

시위는 4월 하순까지 지속되고 밤마다 산봉우리에 횃불을 올려 시위를 독려하고 경기도의 경우 경찰과 무력충돌 70, 부상자 190여 명 체포자 된 자 1.350여 명으로 독립운동이 치열했음을 말한다.

 

돌마면 지역 인사들이 한순회를 중심으로 신간회 지회를 설립하고 이대한, 유인목, 박기환등이 중앙과 연결해 전국 순회강연을 통해 독립정신함양에 노력했다.

 

조선이 망한 이유와 일제식민지가 왜 되었는가조선 후기 헌종 철종 시대 세도정치 권력 싸움과 탐관오리 부패, 3정의 문란, 매관매직 등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 형편으로 그중 3정의 문란은 극에 달해 국고 수입을 탐관오리들이 가로채 재정은 바닥났다.

 

고종 때 대원군의 쇄국정책에서 시작해 갑신정변, 임오군란, 동학혁명, 청일전쟁, 갑오개혁, 을미사변. 아관파천, 러일전쟁, 을사조약,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구한말 격동기는 그야말로 끝없는 민비와 대원군의 피 터지는 권력 싸움에 국고는 탕진되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 근대화하고 강한 군대를 양성할 여력이 없었다.

 

이에 비해 일본은 빠르게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메이지유신을 단행 강국의 체제를 갖추고 허약한 조선을 침략하게 된 것이다일제가 합병 후 조선의 언어와 한글 이름까지 포함 민족말살정책으로 우리의 혼을 뺏고 각종 문회재를 탈취했다.

 

세계경졔 공항이 발생하자 경제착취가 시작되어 해변가에 많은 항구를 개설하고 우리의 특 산물을 착취하여 일본으로 반출했다.

 

특히 군산항을 개설하면서 호남평야 쌀 수탈이 시작되어 1936년에는 춘궁기에 군산에서는 주민 춘궁기 아사자가 514명이 발생하고 가혹한 세금 공출로 250만섬의 쌀이 군산항을 통 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자 일제는 우리의 청장년들 강제징용자 103만 명과 위안부 3만 명 정도 추산되나 신분을 감춘 분들이 많아 정식 신고자는 2023년 기준 240명에 불과하다.

 

이제 36년간 긴 세월 일제의 탄압과 수탈을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속에 깊게 새겨 다시는 강제 징용으로 젊은 우리의 아들들이 수없이 이름 모를 태평양 어느 섬에서 꽃처럼 산화했고 귀한 딸들이 정신대로 끌려간 수모의 역사를 다시는 없어야 한다.

 

 

100여 년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위와 같은 우국 충절의 높고 깊다. 그러나 해마다 3.1절 기념일이 돌아오건만 아파트촌 창가에 태극기 게양을 보기가 어렵다지도층 정치인들은 나 하나, 우리 정당만 살자고 정쟁만 일삼는다. 그래서 오늘의 현실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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