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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과 인연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윤희완 / 자원봉사TV 편집인 | 기사입력 2021/11/11 [14:01]

연분과 인연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윤희완 / 자원봉사TV 편집인 | 입력 : 2021/11/11 [14:01]

[감사의 편지] 복수 불반 분 엎지른 물은 다시는 물동이에 다시 담지 못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번 헤어진 인연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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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간에도 한번 헤어진 부부는 다시 돌이킬 수 없고, 한번 헤어진 벗은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중국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아버지, 문왕의 시호를 가진 ‘서백’이 어느날 황하강 하류인 위수로 사냥을 갔다가 피곤에 지쳐 강가를 거닐던 중 낚시를 하고 있는 초라한 행색의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수인사를 나누고 잠시 세상사 이야기를 하다가 서백은 깜짝 놀라고 맙니다. 초라한 늙은 시골 노인이 외모와 달리 식견과 정연한 논리가 범상치 않음을 엿보게 되었습니다. 

▲ 윤희완 감사의 편지 편집인.     ©성남일보

단순한 세상을 오래 산 늙은이가 가질 수 있는 지식 정도가 아니라 깊은 학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논리의 소유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잠깐의 스침으로 끝낼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한 ‘서백’은 노인 앞에서 공손하게 엎드려 절을 하고 노인의 사정을 물었습니다. “어르신의 함자는 무슨 자를 쓰십니까?”

 

“성은 강이고 이름은 여상이라고 하오.”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제가 스승으로 모셔야 할 분으로 여겨집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너무 과한 말씀이오. 이런 촌구석에 사는 농부가 뭘 알겠소.”

강여상’은 거듭 사양을 했으나, ‘서백’의 끈질긴 설득으로 끝내 ‘서백’은 ‘강여상’의 집으로 함께 갔습니다.

 

그때 ‘강여상’은 끼니조차 잇기 힘든 곤궁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환경에 못 견디어 아내 ‘마씨’ 마저 집을 나간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서백’의 요청에 ‘강여상’은 ‘서백’의 집으로 따라 가 그의 아들 ‘발’의 스승이 되어 글을 가쳤습니다. 그 ‘발’이 바로 주나라를 창건한 ‘무왕’이고 ‘강여상’은 주나라의 ‘재상’이 되어 탁월한 식견으로 놀라운 지도력을 발휘하여 평화로운 정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강여상’이 어느 날 가마를 타고 행차를 하는데, 왠 거지 노파가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바로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아내 ‘마씨’ 였습니다. 

 

남편 ‘여상’이 주나라 재상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천리길을 걸어서 찾아온 것입니다.

 

‘마씨’는 땅에 엎드려 울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강여상’은 하인을 시켜 물 한 동이를 떠오게 한 후 ‘마씨’ 앞에 물동이를 뒤집어 엎었습니다. 물은 쏟아지고 빈 동이는 흙바닥에 나뒹굴었습니다. ‘강여상’은 ‘마씨’에게 “이 동이에 쏟아진 물을 도로 담으시오. 그렇게만 한다면 당신을 용서하고 집에 데려 가겠소.” ‘마씨’는 울부짖으며 말을 했습니다.

 

“아니! 한번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도로 담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강여상’은 그 말을 듣고는 “맞소! 한번 쏟은 물은 주워 담을 수 없고 한번 집과 남편을 두고 떠난 아내는 다시 돌아올 수 없소.”

 

‘마씨’는 호화로운 마차에 올라 멀리 떠나가는 남편 ‘강씨’를 멍하니 바라보며 눈물만 흘렸습니다.

 

노인 ‘강여상’이 바로 낚시로 세월을 낚았다는 ‘강태공’입니다. 이 복수 불반 분의 이야기는 긴 세월 동안 전승돼 오늘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조선 숙종 때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인 ‘옥단춘 전’에 나오는 주인공으로 ‘김진희’와 ‘이혈룡’이라는 같은 또래의 아이 두 명이 있었습니다.

 

둘은 동문수학하며 형제 같이 우의가 두터워 장차 어른이 되어도 서로 돕고 살기로 언약을 했습니다.

 

커서 ‘김진희’는 과거에 급제해 평안감사가 됐으나, ‘이혈룡’은 과거를 보지 못하고 노모와 처자를 데리고 가난하게 살아가던 중 평양감사가 된 친구 ‘김진희’를 찾아 갔지만 ‘진희’가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연광정에서 평양감사가 잔치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찾아갔으나, ‘진희’는 초라한 몰골의 ‘이혈룡’을 박대하면서, 사공을 시켜 대동강으로 데려가 물에 빠트려 그를 죽이라고 합니다.

 

이때, ‘옥단춘’이라는 기생이 ’이혈룡‘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사공을 매수해서, ’이혈룡‘을 구해 그녀 집으로 데려가 가연을 맺습니다. 그리고 옥단춘은 ’이혈룡‘의 식솔들까지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 후 ’이혈룡‘은 옥단춘의 도움을 받아 과거에 급제하여 암행어사가 되어 걸인 행색으로 평양으로 갑니다.

 

연광정에서 잔치하던 ’진희‘가 ’혈룡‘이가 다시 찾아온 것을 보고는 재자 잡아 죽이라고 하자, ’암행어사출도‘를 해 ’진희‘의 죄를 엄하게 다스립니다. 그 후 ’이혈룡‘은 우의정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어린 날의 우정에 맹세를 생각하며 찾아온 ’이혈룡‘을 멸시하고 죽이려고 한 ’김진희‘는 겉으로는 우의를 내세우며 자신의 체면과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우정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양반층의 숨겨져 있는 추악하고 잔인한 이중적인 본래 모습을 보여 준 것입니다.

 

오늘날 여당의 대통령 후보를 볼 때 ’김진희‘와 똑같은 처세와 같은 행위를 보면서 마음이 짠해 집니다.

 

’강태공‘과의 천생연분을 함부로 끊은 아내 ’마씨‘와 ’이혈룡‘과의 친구 간의 우애를 칼로 무 자르듯 잘라버린 ’김진희‘는 모두 말로가 매우 비참해진 것과 같이 오늘날의 여당 대통령후보의 말로도 얼마나 비참해질까 걱정이 됩니다.

 

연분과 인연과 우정의 맺힌 끈은 자르는 게 아니라 푸는 것이 지혜롭다고 할 것입니다. 삶에서 생긴 고리도 함부로 끊는 게 아니고 푸는 것입니다. 일단 끊어버리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사랑도 그렇고, 우정도 그렇습니다. 인연과 연분을 함부로 맺어도 안 되지만, 일단 인연이나 연분을 절대 쉽게 끊으려 해선 더욱 안됩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연을 함부로 맺고 또 마구 자르는 것은 무식한 자의 몰상식한 소치에 불과합니다.

 

사랑과 우정 등 인연의 진정한 가치는 어떻게 끊어 내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륜에서 생긴 매듭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 ’군자와 소인배‘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부분의 소인배는 인연과 연분을 마구 끊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상대가 잘못했다.‘는 ’독설‘로 상대를 공격하는 잔인성을 드러내고 맙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위령공편에 군자 구제기, 소인 구제인, “군자는 자신에게 허물이 없는가를 반성하고, 소인배는 잘못을 남의 탓으로 들춰낸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과오는 모른 채 나를 그 지경에 빠트린 상대방 탓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똑같은 경우에 맛딱드리게 돼 끝내는 허방에 빠져들고 맙니다.

 

사랑과 우정에 혹시라도 얽힌 매듭이 생겼다면 하나하나 지혜롭게 풀어나가야 합니다. 그게 숱한 인연과 연분 속에서 더불어 사는 지혜로운 삶입니다.

 

잠시라도 소홀히 연을 함부로 끊어버리면 양족 상대 모두 비참해지고 인간성마저 추악하고 피폐해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연분과 인연과 우정을 무 자르듯 잘라내는 불학무식 상태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아름답게 늙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연에 매듭이 생기면 더 오래 인내하면서 풀어나가는 지혜로운 습관을 습득한 지성인만이 인생의 최종 승리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만날 때는 항상 진실하고 관대해야 너그러움이 삶의 가장 큰 덕목이 됩니다.

 

작은 바람이 풀잎을 누이고 희미한 달빛이 연못을 비추듯이 내 마음의 거울을 만드는 것도 우정입니다. 거울 속의 비추인 모습도 나의 모습이고 너가 될 수 없으며 있는 그대로 그 모습이 진실임을 잊지 말고 거짓으로 꾸밈없이 진실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고요하면 아무리 세상사가 시끄러워도 자신에게 걸림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진리로 들어갈 수 있는 길임을 감사의 편지는 인도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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