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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와 최승희는 K팝 선배

최창일 칼럼 | 기사입력 2018/07/02 [10:21]

안익태와 최승희는 K팝 선배

최창일 칼럼 | 입력 : 2018/07/02 [10:21]
▲ 최창일 교수.     ©성남일보

[최창일 칼럼] K팝은 한국의 대중음악을 총칭하는 이름이다. 한국의 K팝 탄생을 이야기하면 1981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컴퓨터공학으로 유학을 떠난 이수만이라는 걸쭉한 프로듀서가 등장한다. 허지만 K팝의 탄생은 좀 더 위로 올라가야 근본이 나온다.

 

K팝의 탄생은 193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신시내티 음악학교에 다니다 작곡공부를 위해 필라델피아 3학년에 편입한 안익태(1906-1965)를 빼 놓아선 안 된다. 물론 안익태는 대중음악이 아니고, 더더욱 작곡가라는 점에서 K팝과는 결이 다르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허지만 안익태는 한국인이라면 손으로 꼽을 만한 시절에 미국에 한국의 음악을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음악사다.


안익태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계기는 어린 시절 큰형 익삼이 그에게 스즈키(鈴木) 바이올린을 선물해주어 처음 바이올린을 접했다. 1914년 평양 종로보통학교에 입학하여 트럼펫을 배웠다. 안익태는 대한기독교청연맹(YMCA)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G.게오르게로부터 첼로를 배우며 미국을 여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안익태는 1936년 필라델피아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카네기 홀에서 주관하는 작곡 콩쿠르에서 <한국환상곡Korea Fantasy>이 입선되었으나 뉴욕 심포니 단원의 거부로 낙선이 되었다. 이것은 K팝의 시작을 알리는 전초가 되리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안익태는 유럽으로 진출, 슈트라우스(1864-1949)와 교류를 시작한다. 인간의 인연은 참으로 운명적이다. 1941년 독일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손녀를 구출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슈트라우스의 총애를 받는 제자가 되었고, 유럽 각국의 오케스트라부터 초청 받으면서 지휘를 시작한다.


이 무렵 안익태에게 치명적인 사건이 다가선다. 독일 나치에 협력했던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일본축전곡>을 연주하는 등 일본과 제국주의를 알리는 음악활동에 참여했다. 이런 경력에 그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는 근거가 되었다.


K팝의 역사에서 최승희(1911-1967) 무용가를 빼놓을 수 없다. 1930년대 후반부터 미국과 유럽, 남미 등으로 세계 순회여행공연을 다녔다. 어니스트헤밍웨이, 장 콕토, 게리 쿠퍼, 찰리 채플린, 파블로 피카소, 로버트 테일러 등의 당대의 저명인사들이 그녀의 공연을 관람할 정도 였다.

 

특히 로버트 테일러는 최승희와 굉장히 친밀했다. 최승희는 자신의 자작곡 <향수의 무희>는 그야말로 K팝의 전초가 아닐 수 없다. 번안곡 <이태리의 정원> 또한 수많은 관객을 사로잡았다.


우리의 K팝이 21세기의 전혀 새로운 탄생이 아니라는 것은 여실히 증명이 된다.


또 빙상의 여신, 김연아도 K팝의 대열에 들어서야 한다. 그가 펼치는 주제음악들은 하나 같이 세계인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김연아의 매혹적인 연기는 한국의 K팝으로 바턴이 자연스럽게 넘겨지는 것이다.

 

K팝은 영미권의 대중음악을 팝(pop)이라고 한다. 이외의 국가의 가요나 유행가는 일본의 J팝, 중국의 C팝, 한국의 K팝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팝들이 세계 속에서 하나의 음악으로 불러지고 환호를 받는 것은 유튜브 등 인터넷 매체들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프랑스의 경우 마니아들 사이에 K팝 스타들의 뮤직비디오나 K팝 스타들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한국드라마를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별도 사이트가 있을 정도다.


안익태 작곡가가 유럽에서 작곡, 지휘를 하며 한국의 음악을 알린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의 뮤지션들은 한걸음 더 들어가 유럽 작곡가들의 창작품으로 노래를 하고 있다. 1940년대는 안익태가 작곡한 노래를 유럽인이 불렀다면 2018년대에 들어서는 우리의 스타들은 유럽의 작곡 팀이 만들 노래를 부르며 세계 속에 스며든다.


이렇다면 안익태의 K팝 원조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음악사의 히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K팝은 여행이다. 유튜브가 인터넷을 통하여 전파 되면 소녀시대,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스타들은 음악 여행을 세계 속으로 떠난다.


교육적인 방송이 아니면 특집을 만들지 않기로 유명한 영국의 BBC방송이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 미국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재벌기업’에서 ‘K팝’을 주축으로 하는 한류로 이동하고 있다고”고 방송을 내보낼 정도다.


이러한 한류가 얼마나 지속가능한가에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안익태라는 한사람의 태도가 오늘을 있게 하듯, 오늘의 한류는 단편이 아니라는 점에 밑줄을 친다.


지금 유럽의 젊은이들이 K팝에 매료되는 요인은 뭘까? 프랑스의 K팝 팬 모임 ‘코리언커넥션’의 대표 막심 파케(30 엔지니어)는 ‘프랑스 대중음악은 가창력이 아니라 가사 중심이라 재미가 없는 방면 K팝은 가수들의 외모, 춤 실력 모든 게 잘 어우러져 차원이 다름 음악세계를 보여 준다고 극찬을 하고 있다.


런던에서 600km 이상 떨어진 스코틀랜드에서 K팝 공연도 수 천 명이 여행을 하면서 공연을 즐긴다. 이 같은 현상은 런던이 아니라 K팝의 공연이 열리는 세계의 모든 나라의 광경이다.

 

잠시도 같은 장소에 머물지 못하며 삶의 원석(原石)을 담아내는 것이 K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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