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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삼킨 나혜석의 100년 전 미투

최창일 / 시인 · 한국문인협회 대변인 | 기사입력 2018/03/12 [14:22]

사랑을 삼킨 나혜석의 100년 전 미투

최창일 / 시인 · 한국문인협회 대변인 | 입력 : 2018/03/12 [14:22]
▲ 최창일 교수.     ©성남일보

[최창일 칼럼] 이 땅 최초 여성 동경 유학생이자 서양화가 나혜석. 100년 나혜석은 1년 반 동안 조선 여성으로 첫 세계여행을 했다.


지금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는 미투의 시작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서지현 현직 검사의 미투는 나혜석을 이은 두 번째인 셈이다.


“조선의 남성의 심사는 이상 하외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나혜석은 1934년 <삼천리> 8, 9월호에 ’이혼고백서‘에 적었다. 세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나혜석의 글은 멈추지 않고 시대와 정면으로 맞섰다. 당시 여성에게는 목숨과도 같았던 정조를 선택의 문제로 돌린 사건으로 ‘나혜석’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 펄펄 끓는 명사였다.


이후에도 그는 “여성에 앞서 평등한 사람이다.”라는 외침을 계속했다.


이 같은 나혜석의 평범을 뛰어 넘는 사고와 외침은 어디서 나왔을까? 나혜석의 시대를 앞선 행동은 ‘세계 여행’을 통하여 보고 느낀 것이었다.

 

1921년에 조선 여성 나혜석은 홀로 세계여행을 나섰다. 나혜석의 눈으로 경험한 세상은 자유롭고 평등했다. 런던에 머물면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하던 사람에게 영어를 배우며 여성 운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는 조선의 여성은 여름이면 다리미질을 하고 겨울이면 다듬이질로 일생을 허비하는 하는 것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게했다.


나혜석은 1896년 4월 28일 경기도 수원에서 나기정과 최시의 사이에서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나기정은 대한제국 시기에 경기도 관찰부 재판주사 등을 지냈다. 일본이 통치할 때에는 용인 군수를 지내는 등 지배계층에 속하는 부르주아였다.


나혜석은 수원의 삼일여학교를 거쳐 진명여자보통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1913년 도쿄여자미술학교에 입학했다. 어려서부터 무엇을 보면 연필로 곧잘 그렸다. 여학교 시절에도 그림실력이 뛰어나 그의 그림이 학교의 벽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두 오빠가 일본에 유학 중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유학길이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나혜석은 일본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서울의 정신여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틈틈이 계몽소설을 발표하며 여성 계몽운동에도 뛰어들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 김마리라, 박인덕, 김활란 등 여성운동가들과 함께 비밀집회를 열다가 체포되어 5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때 도쿄유학시절부터 그녀에게 구애했던 김우영의 변론으로 무죄로 풀려났다. 그것이 인연이었을까. 이듬해 그와 결혼했다.


나혜석은 결혼하여 남편 김우영과 2년에 걸친 세계여행을 했다. 그렇지만 가정에 머무는 삶은 아니었다. 유럽여행에서 마주친 피카소. 마티스, 마리로랑생 등을 만나며 예술혼은 불타기 시작했다. 야수파의 그림은 <무희><누드> 연작의 작품마저도 당시 조선 사회를 흔들기에 족했다.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 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 가서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 올 것도 없다. 영구히 가자. 과거와 현재가 텅 빈 나는 미래로 가자”


4남매의 아이들을 두었지만 프랑스 여행 중에 최린을 만나 사랑을 삼켜버린 선각자 나혜석. 조선의 시대는 그를 냉대 속에 자립의 기회는 물론 건강마저 앗아가 버렸다. 세대와 하합할 수 없는 나혜석은 1948년 무연고 행려병자로 막을 내린다.


여행은 감정을 죽이는 것. 혹은 누르는 것인데 나혜석의 시대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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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스프레스 2018/03/12 [15:05] 수정 | 삭제
  •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네요. 미투의 힘이 여행에서 나왔다는 것도 흥미롭구요. 지금은 글로벌시대이지만 건강한 사회를 위한 미투가 정치논리에 왜곡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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