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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니체가 여행한 까닭은

최창일 / 시인 · 한국문인협회 대변인 | 기사입력 2017/09/06 [19:26]

철학자 니체가 여행한 까닭은

최창일 / 시인 · 한국문인협회 대변인 | 입력 : 2017/09/06 [19:26]
▲ 최창일 교수.     ©성남일보

[최창일 칼럼] 니체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였을까? 니체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버림받고 정신착란의 상태에서 방황하던 시간도 있었다. 대학에서 학생에게 혹평을 당하고 멸시를 받는 시간.

 

주변 환경에 상처를 받는 배경이 있었다. 니체는 독일의 작센 주(동부에 있으며 체코와 폴란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음) 뢰켄에서 개신교 목사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세 공주를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일하다가 왕의 특별한 주선으로 뢰켄의 목사가 되었다. 왕의 생일 축제날 아들이 태어나자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여 아들의 이름을 ‘프리드리히 빌헬름’으로 지어 주었다.

 

니체의 아버지는 25세의 나이로 층계에서 넘어져 죽게 된다. 니체의 나이는 5세. 그러면서 니체는 외가에 가서 섬세하고 예민한 아이로 자라게 된다.

 

어린 시절 니체는 기억력이 뛰어나 ‘꼬마 목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 였다. 그는 성경구절과 찬송가를 기가 막히게 암송하였고, 사람들은 그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성장한 배경을 보아서 니체는 소낙비와 같은 혹평에는 감당을 할 만한 저항력이 없었던 순수한 철학자였다.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여 자비로 책을 출간하가도 한다. 그는 스위스의 실바플라나의 호수를 거닐며 자신의 철학을 다듬고 다독였다. 풍경의 지루함까지 사랑하였다. 1888년 4월 이탈리라 토리노에 간 니체는 그곳에서 <힘(권력)에의 의지>를 마무리 하려고 했으나 끝내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다시, 니체의 여행은 어떤 의미였을까, 의문을 갖는 사람들은 많다. 철학자들은 길 위에서 대답을 듣는다는 말이 있다. 방황, 이탈, 숭고, 혁명, 이상, 박해, 죽음 등이 여기에 속한다.

 

정치인의 여행은 새로운 체제로 인도하려고, 순수한 호기심 때문에, 그들 나라 현인들보다 더 위대한 현인을 만나기위에, 그리고 적과 싸우기 위해서도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작가나 철학자들이 여행을 하는 것은 불안감을 감추기 위함도 있다. 의심은 진실을 향한 여행의 원동력이 된다는 말도 있다.


신학의 측면에서 여행을 떠난 철하자들은 많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론>으로 유명하다. 그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모험의 여행을 감행한다.

 

그는 40년 동안 여러 도시를 떠돌아 다녔다. 니체도 그중의 한사람이다. 여행의 길에서 그의 철학의 이론을 만들어 갔다. 니체가 태어난 독일에서 육체적 정신적 병으로 인해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방문한 스위스를 배경으로 그의 수많은 사상의 정점을 보탠다. 후반부에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니체가 이탈리아를 방문할 즘은 니체의 사상이 초고조로 무르익는 시기였다. 니체는 이탈리아 여행 중 루 살로메라는 여인을 만나고,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한다. 또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비롯한 대표작들은 이 시기에 쓴다. 니체의 사진 중에는 이탈이리아가 많다. 일설에 의하면 이곳에서 단골 카페에 자주 방문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니체가 산책을 즐긴 산마르노 광장을 가면 그를 마주 할 수도 있었다. 니체는 이 광장을 거니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니체는 <짜라투스트라>에서 이런 말을 한다. ‘연락도 없이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태도와 약속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다’역사적인 철학자 니체도 기다림에는 분개할 줄 아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분명하다.  여행은 철학자, 니체의 사상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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